지난 주말 델라웨어 주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고속도로만을 타고보니 빠르긴 한데 길이 영 밋밋해서 졸립기도 하고 무료해서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역시 작은 길로 접어드니 시골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가는 기차도
보였다.
그런데 늘상 보던 매끈하게 빠진 암트랙 기차가 아닌 육중한 덩치에 시꺼멓게 생긴 짤막한 화차(火車)처럼 보이는데다가
'치익칙~ 폭폭' 소리까지 추억의 증기기관차가 아닌가!
블랙홀에 빠져들기라도 하듯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기차가 사라진 곳을 쫒아 언덕을 넘으니 넓디 넓은 벌판에 수백대의 차량들이
보였다. 인적 뜸한 동네에 넘치는 차량들을 보니 직감적으로 특별한 행사가 있구나 싶어 주차를 하고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탁 트인 장소라 거기가 거기 같았는데 걸어서 15분이 넘는 꽤 먼거리였다. 주차장과 행사장을 연결하는 모든 교통수단은
트랙터로 그것도 그냥 경운기가 아닌 증기(蒸氣)로 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말을 타고 가는 이들도 있었고 마차를 타고 가는
이들도 많았다.

▲ 행사장이 열리는 곳과 주차장을 오고가는데 걸어서는 약
20분 족히 되는 거리로 연결되는 교통편은 걸어서 가는 것 아니면 트랙터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마차를 끌고
가기도 하고 증기 트랙터를 타고 가기도 하는등 교통편이 이채롭다.
마치 서부영화의 배경처럼 뿌연 흙먼지가 일면서 석탄을 태우는 냄새가 맡아졌다. 보아하니 농장에 쓰이는 모든 기계들이 총
출동해 있었는데 대부분이 증기와 가스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태반이었다. 더군다나 소리들은 어찌나들 요란한지 신기하기가 그지 없었다.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기계들과 작동음과 경적소리는 내가 지금 1900 년 대 초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나르는 일, 물건을 실어 내는일, 곡물을 빻거나 목재를 자르고 다듬는 것들 모두가 사람의 직접적인 손과 노동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산물로 요즘의 디지털 시대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들이 총 집합되어 있었다고 해야 맞을것 같다.
족히 타임머신을 타고 백년전으로 회귀(回歸)한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런지.......
내가 백년전의 시대로 돌아간 착각을 했다면 상황을 바꿔서 1900년 초에 살고 있던 사람이 100년 후인 지금 2013년
맨해튼의 도심 속에 들어와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떻게 비칠까 상상해 보았다. 노동력의 상징인 말이나 소는 없을 터이고 물 과 불, 화력과 수력을
이용해서 돌리던 기계들은 존재하지 않고 컴퓨터라는 매개를 통해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주변의
모든 일들이 무엇인가의 작동에 따라 빠르고 쉽게 움직이는 모습을 직면한다면 당황스럽고 혼돈(混沌) 자체로 오지는 않을까.
무엇보다도 이어폰과 블루투스 폰을 낀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춤을 추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웃어대는 모습을 보면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할까? 게다가 예외랄것 없이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작고 납작한 물건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혼을 빼앗긴듯이 신경을 집중하면서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분명 ‘이상하고도 괴상한 나라’에 와 있다고 느껴질 게 틀림없다.
노동과 기계 작동의 원리로 인지되는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대신 알 수 없는 전자회로판이며 작은 칩이 그 역할을 한다면
심한 저항감과 두려움으로 오지는 않을지......또한,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각종의 인공적인 소리음들로 해서 혼란스러워 하며 귀를 막게 되지는
않을지 .......
▲ 1900 년대 초 쓰던 증기로 움직이는 트랙터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해서 아직도 작동이 되나 싶어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튼튼하게 백년은 더 쓸 수 있다고 한다. 아날로그의
장점이 기계적인 결함만 없다면 무궁무진 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부터인가 오래된 ‘타자기와 벽시계 그리고 전화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성이 생겼다. 수량이나 종류가
많지도 다양하지도 못해서 전문적인 수집가에 비할 바는 못되나 더는 현 생활에서 제 역할이나 구실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되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터득하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종종 얻고 있다.
어느날 벼룩시장에 나온 타자기의 단추를 틱~ 눌렀었는데 손끝에 튕겨져 오는 반동(反動)이 신선했다. 둔탁했지만 또렷하면서
짜릿한 느낌과 함께 선명하게 찍히는 활자도 재밌었다. 기계가 주는 반동이 다채롭고 즐거웠으며 한 줄이 끝날 때마다 나던 ‘띵~’ 하는 알림음,
말아진 종이를 내리기위해 돌릴 때 나던 ‘드르륵~’ 소리 등은 타자기와 내가 교감하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타자기를 쓰면서 머리와 손 그리고
귀와 눈이 동시에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 오래된 다락에서나 맡음직한 냄새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오래된 다이얼 전화기 역시 마찬가지로 손 끝의 감각을 읽어내고 살려주는 역할이 놀라웠다. 다이얼에 손가락을 끼울때
느껴지는 온도며 촉각도 그랬고 돌릴 때마다 나던 소리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따르륵~딱~ 따륵 따륵~’ 거리던 소리는 단박에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묵직하고 까맣던 전화기가 들어오던 날의 추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더불어서 번호를 돌릴때마다 번호가 외워지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는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1초도
안걸리는 단축번호를 쓰고 별명이나 암호로 명명된 것으로만 기억할 뿐 상대방의 이름도 기억해야 할 번호들조차도 정작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싯점에
와 있다.
괘종시계, 벽시계 또한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물건중의 하나이다. 더러 있어도 디지털 시계여서 초침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소리가 없는것에 반해 오래된 벽시계나 괘종시계는 매 30분 마다 ‘뎅~’ 소리로 알려 주었고 시간에 맞춰 ‘뎅뎅뎅~뎅’ 하는 종소리가
나면서 묘한 울림을 주었다. 태엽을 매번 감아 써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고쳐써야 하는 고비용 까지 감수하면서 시계를 구입한 이유는 추억을
일깨워주는 역할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발달된 문명(文明)의 이기(利器)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눈, 귀, 코, 혀,
접촉'으로 인해서 인지되고 발달되어야 하는 감각은 문명의 편리함과 이로움에 파묻혀 잊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게 된다.
어떤 이들은 지난 아날로그 세대는 불편했고 지금 맞는 디지털 세상은 편리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과 이로움에
길들여지면서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오감(五感)’을 눈 뜬 사이 코 베어 가는 식으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지........더러는
그것에 대한 해답으로 상생(相生)과 조화(調和)를 이룬 ‘디지로그(Digilog)’ 세상을 꼽기도 하더라마는.
▲ 경운기의 바퀴가 얼마나 큰지 비교가 되는 사진으로
이정도 크기의 거대한 바퀴가 굴러가면서 힘을 써줘야 그 너른 벌판 같은 밭을 다 갈 수 있다고 한다.(왼쪽
사진)
첨단기술과 편리와 이기에 담보되고 길들여지면서 어쩌면 우리는 백년 전 아니 수천 수만년전 인류가 생기면서 한번도 변하지
않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휴먼 스피드(Human Speed)’를 행여나 애써 외면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혹은, 오감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즐거움과 추억의 권리조차도 빼앗기거나 저당(抵當)잡히며 살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곤 한다.
그날 만난 트랙터를 몰던 골이 깊게 팬 주름의 70 후반의 아트(Art)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가족들이 일년에 서너번 모입니다. 그런데 모일때마다 손주들을 보면 각자 컴퓨터니 스마트폰이니 게임에 열광할 뿐
가족간에 대화나 일에는 정작 관심이 없더군요. 그것이 나쁜것도 아니고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가족들이 모였어도 각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것
같아. 뭐랄까....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사는것은 아닌가 해서 안타깝기도 하지요. 이런 행사에 올 때마다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 받는것 같아
기쁘고 삶을 돌이켜 보니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살았었구나 싶어 행복한 시대에 살다가는걸 감사할 뿐이지요.”
우연챦게 예정에도 없이 먼지 뿌옇던 곳에서 보낸 반나절은 본래의 여정을 완전히 빗나갔지만 후회는 없었다. 짧았지만
‘아날로그 시대로의 회귀’를 잠시나마 운좋게 누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내내 잊고 있었던 소리들에 귀가 트이고, 사라져 버렸다고 믿은 냄새를
맡고, 까마득하게 잊었던 기계 작동의 원리를 보면서 노동에 감사함을 느끼고, 사람들과 더불어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는 자리가 되었다.
눈에 앉은 미세한 때를 닦아내고 귀에 앉은 먼지들을 털어낸 기분처럼 아날로그 시대로의 짧은 귀환(歸還)은 둔탁해지고
녹슬어있던 감각들을 깨워주고 유감없이 느끼게 해 준 '오감이 만족한 특별히 행복한 하루'였던 것 같다.
▲ 제목/ A Man's Figure. 2006. 종이에
붓 펜. 설명/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디지로그(Digilog)라고 부른다 한다. 바쁘고 모든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가끔은 지렛대를 이용해서 어깨도 펴고 세상을 멀리 보면서 숨을 고쳐 쉬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