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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탈 때 마다 만나는 ‘로사 팍스’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3-03-01 (금) 07:26:25



 

버스에 올라 탈 때마다 예외없이 기억나는 나의 실수담(失手談)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 화끈거리는 ‘민망함’이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함’이라면 적당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16년 전 맨해튼을 동서남북으로 훓고 다닐 때였다. 뉴욕에 막 도착한 나는 지리에 어두운 ‘길치’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걸어야 했다. 뉴욕이 초행길인 사람에게 버스는 바깥 풍경(風景)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자 피곤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면서 내릴 곳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여러 장점 때문에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이용했다.

 

당시 머물던 숙소가 암스테르담 애버뉴 103가에 있어서 노상 이용했던 노선이 ‘7번’ 이었는데 북쪽의 할렘의 웨스트 145가에서 남쪽의 유니온 스퀘어 까지 긴 구간을 운행하고 있었다. 구간별로 그리고 시간별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구분이 명확한 버스이다 보니 사람들을 통해서 맨해튼의 정취(情趣)를 읽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돌이켜보건대 버스를 타는 진짜 즐거움은 딴 데 있었다.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경우만 아니면 운전사 뒤에 있는 마주보는 좌석에는 예외 없이 꼭 빈 좌석이 있었기에 버스에 올라타면 마치 예약석 찾아 앉는 기분을 만끽(滿喫)하곤 했다. 시야도 툭 트인데다가 하루 내내 걸어 다니다 보면 피곤한 다리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더러는 낮잠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어서 더욱 좋았다. 그것도 운전석 바로 뒷 편이라 여차하면 기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에도 편하고 잘못 탔을 경우엔 빨리 내릴 수도 있는 여행자에겐 최고의 좌석이었다.

 



 

그뿐인가. 큼지막한 맨해튼 노선 지도도 부착되어 있었고 버스 지도들이 승객들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지도까지 꽂혀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뉴욕은 관광의 도시답다고 감동하기도 했다. 요금 또한 $1.50센트여서 요금 대비 2시간 반 정도 되는 넉넉한 버스드라이브 역시도 큰 즐거움 이었다.

 

그렇게 지정석 찾아가듯 앉아서 넋 놓고 바깥 구경을 하다 보니 버스 승객들 중에서 나를 한참씩 쏘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대충 1주일이 지날 무렵부터 몇몇 승객이 예사롭지 않게 날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뭐랄까…. 그 시선 속에는 ‘황당함’ 내지는 ‘괘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겠거니 싶어서 ‘구경은 자유’라는 생각에 기꺼이 감내(堪耐)했는데 어느 날 누군가 나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뭔지 잘 몰라서 기분이 찜찜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미국인들이 거부감을 말없이 표현하는 제스추어 였다. 예를 들면, 눈알을 360 도 빙그르르 굴린다거나 고개를 좌우로 서너번 설레설레 젓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혀를 차는 모습처럼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거나 어이없는 경우에 봉착했을 때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싶었는데 어느 날 그 의문이 풀렸다.

 

체구가 작고 보라빛 망사 모자를 쓴 70세가 넘어 보이는 흑인 할머니가 옆에 앉았다. ‘뉴욕이 초행인가요?’ 라고 물어와서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대화 도중에 할머니가 묻기를 ‘혹 몸이 어디 불편한지?’ 물었다. 왜 물으시나 궁금해 하니 내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머리 바로 윗편을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해 준비된 좌석이니 양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그것도 모르고 장애인 석에 넉살좋게 앉아갔으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받았던 교육 덕분에 임산부나 노인이 올라올 때 마다 자리를 흔쾌히 양보하긴 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할머니 왈, “자리가 비어 있으면 우리 노인들이 앉지만 비키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장애인 석이 비어져 있어야 하는 의미를 짚어 주었다.

 



 

 

자신을 '로사' 라고 소개한 친절한 할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버스에 오를 때 마다 조용한 가르침을 준 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떠오르는 특별한 인물이 있다.

 

 

‘로사 팍스(Rosa Parks)’. 1913년 2월 4일 앨라바마 주의 터스키지 라는 동네에서 목수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몽고메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백인아이들은 버스를 이용하는 반면 흑인 아이들은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당시에 남부에서는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s)’ 이라 불리는 인종분리법이 존재했는데 버스나 기차 등의 교통수단은 물론이고 영화관, 식당, 병원, 교회, 이발소 심지어는 화장실조차도 백인과 구별해서 ‘백인 전용(White Only)’ 내지는 ‘유색인(Colored)’ 으로 명확하게 표기되었으며 모든 시설의 입구와 출구까지 따로 나뉘어져 있었다.

 



▲ 오직 백인들 옷만 세탁 해드립니다 라는 알림판 / 흑인들은 음식을 사갈수는 있어도 식당에서는 먹을 수 없다는 뜻 / 수영장은 백인만 사용 가능.


 

1955년 12월 1일 퇴근길의 버스 안에서 로사 팍스는 백인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운전사로부터 자리를 옮기라는 강요를 받지만 ' 백인과 평등하게 앉을 권리가 있다'며 불응, 급기야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75%가 흑인이었음에도 버스 승차를 거부하고 걷는 시민운동이 촉발되었다. 그녀의 용기가 흑인인권운동의 불씨가 된 것이다.

 

 



 

▲ 몽고메리 카운티 감호소에서 수형번호 '7053' 을 들고있는 당당한 모습의 로사 팍스 여사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운동 (Montgomery Bus Boycott)’의 선봉(先鋒)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었다. 드디어 381일 째 되던 날 1956년 연방 대법원에서는 버스내의 흑백 구별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서 인종분리법인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 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 백인전용과 흑인전용 음수대 사진. 따로 분리된 것도 모자라 크기, 위치, 높이에서도 인종차별이 느껴진다.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 정권에 이르러 ‘피부색, 성, 종교, 인종 등을 근거로 하는 차별법이 철폐됨과 동시에 ‘민권법’이 발효되었다. 이로서 흑인들이 교육 및 공직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1965년부터 흑인들도 투표를 할 수 있는 참정권(參政權)이 보장되었다.

 

2005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로사 팍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곤돌리자 롸이스는 ‘만약, 로사 팍스가 없었다면 내가 국무장관이 될 수 없었을 것’ 이라는 추도연설을 했다. 로사 팍스의 인권운동이 그때 시작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오바마가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었을까? 이후 ‘짐 크로우법’ 이라는 인종차별법이 삭제되지 않았더라면 흑인들의 지위와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거슬러 올라가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존재도 부각(浮刻)될 수 있었을까?

 

 



 

2월에 있는 로사 팍스의 생일, 2월의 세번째 월요일에 기념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 미 국회에서는 수 백 년 동안 있어온 흑인에 대한 인종적인 차별과 편견, 노예제(奴隸制)라는 수난을 고통을 이겨내고 정치, 문화, 예술, 인권 및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흑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로사 팍스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를 기념하여 27일 국회의사당 기념관에서는 특별한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2700 파운드로 만들어진 브론즈 동상은 흉상이 아닌 것으로 버스 좌석에 앉은 형상으로 되어있다. 이로서 로사 팍스 동상은 국회의사당 인물 기념관에 들어가는 첫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여성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 로사 팍스(Rosa Parks)가 탄생한지 100주년 되던 2월 4일 포에버(forever) 기념우표가 출시됐다.

 

1967년 2명의 흑인 정치인에서 2013년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재선에 선출될만큼 괄목(刮目)할만한 정치력 신장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인종적인 갈등과 편견 그리고 차별의 문제는 가시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2월을 보내면서 흑인의 인권은 어디쯤 얼만큼 달라졌는지 그 위상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 2012년 4월 19일 미시건 주 디어본에 위치한 헨리 포드 박물관(Henry Ford Musem) 방문시 1955년 당시 로사 팍스 여사가 앉았던 버스 좌석에 앉은 오바마 대통령.

 

제막식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Barak Obama) 대통령은 동상을 세우고 업적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사 팍스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용기’ 와 ‘신념있는 행동’ 을 우리가 마음속에 배우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2월을 순 우리말로 꽃샘 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이라 하여 ‘시샘달’ 이라고도 한다. 미국 원주민들은 2월을 자연에서 얻은 지혜를 빌어 ‘너구리의 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달,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 햇빛에 서리가 반짝이는 달, 오솔길에 눈이 녹는 달’ 이라고들 부른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우리 모두가 2월을 상징하는 달 이름으로 기억했으면 하는 달 이름은 연방정부가 정한 ‘흑인 역사의 달’ 이 아닌가 싶다

 

February is ‘Black History Month’

 



 

▲ 제목 /Afro American Femaie Portrait Croquis 2009 종이에 흑연심 설명/ 로사 팍스의 명언 .“I would like to be known as a person who is concerned about freedom and equality and justice and prosperity for all people.”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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