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보와 낙서가 넘치는 맨해튼. 상업적이라기엔 지극히 예술적으로 보이는 벽보들이 많아 지나치지 못하고 구경하느라 시선을 뺏길 때가 많다.

▲ 찢겨진 포스터 조각. 추상화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맨해튼에 넘치는 거리 벽보중의 하나.
오랜 풍상(風霜)으로 겹겹의 벽보들이 헤어지고, 찢겨지고, 퇴색해지면서 다시 덧붙여지면서 만들어 내는 오묘한 꼴라쥬는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독특한 볼거리들이 많은 맨해튼 거리를 지나다니다 발견한 벽보 하나.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문양과 색상이 선명하고 보색(補色) 대비 또한 확실하여 얼핏 보면 앤디 워홀(Andy Warhol) 기법의 판화 작품 같아 보이기도 한 포스터는 대통령 선거를 3주 앞두고 있는 '민주당의 오바마(Obama)' 와 '공화당의 롬니(Romney)' 두 후보의 얼굴이었다.

선거를 앞둔 때라서 선전용의 벽보를 붙였나 보다 해서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다가 어느날 에서야 그것이 예사롭지 않은, '민심을 반영하기 까지 하는' 포스터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목도 흥미로웠다. '누가 제일 엿 같습니까? 당신의 껌으로 투표해보세요. ‘WHO SUCKS THE MOST?, VOTE WITH YOUR GUM’
알고보니 스테판과 제임스(Stefan & James)라는 이가 공동 기획한 일종의 “투표를 고취하고 거리를 좀 더 깔끔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The purpose of the idea was to encourage people to vote on Election Day as well as keeping the city a little cleaner) 마련된 제작비 15 달러의 환경미화 프로젝트'라 했다.
풀이하면, 대통령 후보의 얼굴에 붙이는 ‘껌 딱지의 숫자’를 통해서 미리 점쳐보는 예비선거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나 둘 씩 붙기 시작하던 껌은 날이 가면서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로 점차 불어났다. 숫자가 불어나면서 화려해지기까지 했다. 흰색, 선명한 노랑, 초록, 분홍, 빨강..... 거무튀튀해진 회색 빛깔까지 단물이 빠지는 농도에 따라 다른 채도로 나오는 씹다버리는 껌들의 색과 붙여지는 형태들 또한 다채로웠다.

씹고 버리는 껌을 길바닥이 아닌 종이에 붙임으로서 거리 정화 차원에서 고안해낸 아이디어 라고 했지만 그렇게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반응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혹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두가지로 나뉘었는데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불결하다고 불평을 하는 이들보다는 “해학적이다”, “흥미롭다”, “개념 있다”, “가장 돈 안들인 정직한 예술이다”, “선거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민심이 천심이다”, “선거에 관심이 생겼다” 라는 반응이 더 많아 보였다.
어느 날 마침 그곳에서 껌을 붙이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냥 붙일 것이지....왜 그렇게 까지 짓이기는지?' 라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傑作)이었다. 사람들은 얼핏 보면 후원하는 후보에 껌을 붙이는 게 맞다고 보이지만 실은 좋아하지 않는 후보 즉, 당선되어선 안될 후보의 얼굴에 '씹다버리는 껌딱지'를 자유자재로 붙임으로서 이상한 쾌감 내지는 정화(淨化)를 하게 만든다고 했다. 나름 일리 있는 대답이어서 수긍이 갔다. 어찌되었든 3주 간 관심있게 그 경과를 지켜보게 되었다.
선거를 앞둔 날에는 롬니 후보 얼굴이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껌으로 떡칠이 되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Barak Obama)'가 당선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놀라운 풍선 껌들의 예지력(?) 덕분이래나 뭐래나......

한국도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제발 이제는 같은 지역이라서, 같은 종교라서, 같은 고향이므로, 동창이니까 등등 개인적인 연고만큼은 제외하고 뽑기를 바란다. 한국을 밖에서 보면 남북의 분단도 서러운데 다시 지역별로 쪼개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5년전 숭례문이 전소(全燒)되는 것을 시작으로 임기 내내 불행한 일들의 연속을 보면서 5년 내내 가슴을 조렸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한번의 실수가 최소한 5년이고 대를 이어서 내려감을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외국에 살아보니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12월의 타임 <Times> 아시아 판에 흥미로운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The Strongman's Daughter’ 라는 문구와 함께 국방색 옷을 입은 박 후보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이를 두고 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타임지에서도 박 후보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로, ‘역사의 후예’로 다뤘다면서 선전용 보도자료로 삼았다고 한다.
사전을 찾아 보니 명사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A politician or leader who uses violence or threats' ' If you refer to a male political leader as a strongman, you mean that he has great power and control over his country, although his methods may sometimes be violent or morally wrong'
‘Strong Man’ 을 ‘힘센 남자 내지는 차력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띄어쓰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두 단어 ‘Strong’ 과 ‘Man’이 각각의 단어로 쓰여지면 그렇지만 붙어서 한 단어가 될 때에는 '독재자, 압제자, 폭군, 전제군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뜻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달라 영어 단어 해석을 제 맘대로 해버린 '새 대가리들의 한계' 라는 우스갯 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ㅇㅎ통신에서 ‘실력자의 딸’ 로, 국영 방송사인 Kxx 에서는 ‘능력자의 딸’ 로,' 어떤 곳에서는 ‘강력한 지도자의 딸’과 ‘권력자의 딸’ 등으로 자의적인 해석과 쓰임이 분분하자 타임은 같은 날 저녁 인터넷 판 제목을 <The Dictator’s Daughter> 아예 ‘독재자의 딸‘로 수정을 해서 그 의미를 못 박은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인으로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는 국제적인 조롱거리이자 망신살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도 북한을 다루면서 ‘독재자의 아들’을 표지 모델로 다룬 적이 있는데 ‘KOREA’라는 나라가 북이나 남이나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막론하고 각각 ‘위대한 영도자의 아들’ 내지는 ‘강력한 실력자의 딸’ 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상황이 되어 버린것에 슬프기 짝이 없다. 이러다가 남북 모두 ‘독재자의 나라’로 대를 이어 아들과 딸이 설치는 ‘독재국가’로 전락되는 게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온라인 상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일련의 댓글들을 퍼 와봤다.
“사진 찍을때만해도 타임지 커버모델로 나온다니 신났었겠지...” “ㅠㅠ부끄럽네요...” “의상이랑 표정 진짜 이상함...의상은 북한 코스프레인가...이게 뭔 망신이래..ㅡㅜ” “김정일이랑 너무 어울리는 복장이랑 표정인듯..” “당선된다면 남과북이 나란이 독재자 후손들이 정권을 잡는 아주 웃기고 쪽팔린 사태가 벌어지는 거지요. 아마 그렇게 되면 세계 유수 언론들이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은 독재국가로 조롱할 게 뻔해요” “사진 괜히 찍었다...싶겠네요.아시아판 표지라... 부끄러버요.ㅠㅠ” “북한과 남한.....아...창피하네요.” “저거 타임 홍콩팀에서 만나서 인터뷰 가서 찍은 사진이에요..박근혜도 저런 내용이 나올지는 몰랐겠죠...” “잘못을 숨긴다고, 그 잘못이 사라질까요.상처는 밖으로 드러날때 치유받을 수 있어요.종양은 드러내야죠.한국 언론이 '안'하는 일을 대신 해주었네요.이것또한 우리의 치부라, 부끄럽지만 드러내주었으니 감사하군요.” “고소하고 싶을듯...”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북한의 김씨 부자들의 부인 아님 며느리인줄 알겠어요.”
여간해서는 일어나기 힘든 제목까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수정해가며 '독재자의 딸' 임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써대는 한국 언론에 일침(一鍼) 을 가한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한 해프닝 차원이 아닌 한국 국민들이 각성하길 바라는 ‘묵시적인 경고’는 아니었을까?
37년 전 정권에 의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장준하 선생’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만큼은 안된다” 고 했다. 그 이유를 아래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 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즉, 박정희 생도에 대한 평가에서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 라고 했다. 조선인으로도는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던 시대에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는 3번씩이나 혈서(血書)로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충성을 다 바쳐 나라(日本)에 보답하고, 나(私)를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 라고 3차례나 써서 일본군을 감동시켜 학교에 입학했다.
만주 신경 군관학교 졸업식장에서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가 쓴 답사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라고 했다던가!

박정희는 1963년 펴낸 <국가와 혁명과 나> 라는 책에서 “작은 섬나라 일본이 명치유신 이라는 혁명을 겪음으로써 극동의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며 아시아의 경이이자 기적” 이라며 명치유신에 대한 경외감을 감추지 않았다. 1961년 11월 12일 일본 방문시 동경의 한 요정에서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께 등과 가진 자리에서 “나는 일개 군인으로 정치도 경제도 모르지만 명치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앞장선 지사들의 정열을 높게 평가한다. 그와 같이 해볼 생각이다” 라고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해서 일본 정객들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여기서 명치유신의 선봉자들이 누구인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한론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아닌가!
1962년 취임식에 경축사절로 온 오노 반보쿠(大野伴睦)라는 자는 자민당 부총재로 “아들(박정희)의 경사를 보러 왔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고 다닐 정도로 부자 사이임을 자인하고 다녔으며 툭하면 일본의 대동아공영 망언을 일삼고 다녔다. 또한 강창선 당시 보안사령관 말에 의하면 기분이 좋을 때면 ‘말 장화와, 채찍, 점퍼차림’을 즐겨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는 청와대 내에서 말 타기를 즐겨했다거나 뜰을 거닐면서 일본군가를 부른다거나 일군의 코스프레를 꽤나 즐긴 것으로도 세간에 유명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10.26 당시 박정희의 사망을 두고 일본 외교관은 이렇게 탄식했다던가? “제국시대의 마지막 일본군인이 죽었다”라고. 이게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다카키 마사오(한국 이름 박정희)의 실체이다.
독재자의 딸이기에 앞서 조선독립군을 토벌하고 다닌 일본 특수부대원이었던 ‘일본군인의 딸’ 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대톨령이 되어서야 어디 한 나라의 자주(自主)가 서겠는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초개(草芥)같이 목숨을 버린 수많은 독립 열사와 의사들께 어찌 그 죄스러움과 수치스러움으로 낯을 들고 살겠는가? 이제라도 진실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절대 안될 일이다.
내 맘에 드는 최선의, 최고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이가 없다고 해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기권하는 것은 비겁하다. 그것은 역으로 대통령이 되어선 안될 후보를 뽑아주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소수계와 젊은 세대의 높은 투표 참여가 향방을 갈랐다”는 결과 분석을 보면서 깨달은게 있다. 젊고 용기있는 한 사람의 표가 미래를 결정한다는것.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고, 차선도 없다면 그래도 최악(最悪)이 되는 불행한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제목/ A woman figure. 노란 재활용 종이에 잉크. 2006. 설명/ 색깔이 주는 상징적인 상관관계의 중요성을 나날이 의식하면서 살게 된다. 적어도 한국에서 ‘노란 빛깔’은 민주의 상징이자, 변화의 열망을 담고 있는 개혁의 상징이다. 노란빛깔의 종이에 그려진 크로키를 통해서 한국에서 독재의 잔재가 사라지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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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1:09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