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을 걷다 보면 난 생 처음 보는 풍경들을 접하게 된다. 주로 스포츠용품 가게, 카페, 식당. 술 집, 바 등에 걸린 월드컵 참가국 32개 국의 국기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걸려 있다.
특히, 한국인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태극기와 인공기도 나란히 걸려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2010년 월드컵에는 남 북이 동시에 예선을 거쳐 32강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치나 분단의 주제가 아닌 스포츠에 연관해서 노스 코리아 라는 말을 지금처럼 많이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노스 코리아 축구에 관한 촌극 하나를 소개 해야겠다.
지난 3월 달이었다. 지인 중에 리카르도라는 멕시칸 아메리칸이 있다. 어느 날 리카르도가 사무실로 씩씩거리며 들어와 한다는 말이 “저기 있는 코리안 델리 있쟎아. 주인이 아주 형편없어. 종업원들을 상대로 해서 내기를 해서 졌으면 약속대로 돈을 줘야지. 치사하게 돈을 떼먹을 모양이야.” 무슨 영문인가 몰라 채근해서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그러자 다짜고짜 묻는다. “노스 코리아가 코리아는 코리아 맞지?”
“아니,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을 다하냐”고 되물으니 대답부터 하란다. “그럼, 북한도 코리아는 코리아지. 코리아라는 명칭을 같이 쓰는건 물론이고, 역사, 문화, 언어, 조상까지도 같은 한 나라인거 맞아. 다만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을 뿐”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시작했다. 미드타운에 있는 델리에 음료수를 사러 들어갔는데 그 델리 종업원 몇몇이 모여 스페인어로 한국인 가게 주인을 향한 불만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왜 그러냐고 말참견을 하니 하나같이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느냐며 성토를 했다고 한다. 그는 겉모습만 봐서는 영락없는 한국인과 같은데 여기서 태어난 멕시칸 아메리칸으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디자이너이다.
참고로 뉴욕에는 델리가 많다. 델리카트슨을 줄여서 델리라 부르는데 주로 식음료, 샌드위치, 야채와 과일 등 등을 파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골목마다 있는 가게로 봐도 좋겠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이민 온 이들로 델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밑에서 온갖 잡일과 허드렛일을 하는 종업원 들은 라티노 라고 부르는 남미, 중미에서 온 사람들이다.
델리가게 종업원들에 따르면 어느 날 델리의 주인이 멕시코 종업원들로부터 코리아가 멕시코에서 친선 축구 경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종업원들이 멕시코가 이길거라고 하자 주인은 코웃음치며 내기를 제안했다. 종업원 5명에게 코리아가 이기면 한 사람당 100불씩 주고 멕시코가 지면 종업원 각각 100불씩 내라고 해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경기는 멕시코의 승리로 끝났고 종업원들은 희색이 만면으로 주인에게 약속대로 100 불씩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이 펄쩍 뛰며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주인은 코리아라고 말한 것은 대한민국이지 북한이 아니라는 것. 알고보니 그 경기는 북한(DPR)대 멕시코경기였다.
아마도 북한이 멕시코에 까지 가서 친선경기를 벌인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수 도 있는 그입장 에서 코리아 축구 하니까 무조건 대한민국만을 떠올렸을 그의 입장에서 그랬을거라 그 상황이 추정되는 내 입장에서 그의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리아가 두 개의 분단된 나라로 한국을 지칭하는지 북한을 지칭하는지 제대로 알고 임했다면 그런 내기는 하지도 안했을 것이며 결론적으로 그 내기로 인해서 사장으로서의 다수의 종업원 들에게 체신과 신의를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종업원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사전에 노스 코리아나 사우스 코리아라는 구별이 없이 했다 하더라도 같은 코리아 라는 영어표기를 같이 쓰는 입장에서 “코리아는 코리아 아니냐?”고 되묻는 그들의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코리아를 남과 북으로 나누지 않고 부른 것도 주인의 실수요, 코리아가 분단된 상황의 두 나라로 존재함을 인식하지 않아서 코리아 라고 만 우긴 종업원 들도 실수를 한 것을 고려해서 ‘없던 것 으로 하라’는 일방적인 횡포 대신 주인 입장에서 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50불 씩이라도 줬으면 그들의 볼멘 소리가 없으련만 재미로 호기롭게 시작한 내기 축구가 뉴욕의 한 구멍가게에서 한국인 주인을 향한 개운찮은 뒷맛만을 남겼다.
▲ 재활용 종이에 먹물. 2009. 아프리카인들이 동네에서 동물의 오줌보로 공을 만들어 축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먼지속에서 맨발로 뛰던 모습들이 문득 떠오른다
요즘, 맨해튼의 새로운 풍경상가나, 카페, 술 집,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된 바 에는 월드컵 참가국 32개 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태극기와 인공기도 나란히 걸려있다. 난 생 처음 보는 양 국의 국기를 보면서 언젠가 통일이 되면 저렇게 두 개의 국기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국기로 걸리겠지 그리고, 노스니 사우스니 라는 구별 없이 ‘코리아 하면 코리아‘ 로 이해될 것이고 그와 같은 사소한 촌극으로 인한 시시비비를 가릴 일은 없어질 것이다.
북한은 1966년 월드컵 에서 8강에 오른 기적적인 신화를 이룬 팀이다. 또한, 대한민국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룬 화려한 성과를 가지고 있다. 역대 월드컵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32강에 들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뛰고 있다. 남이든 북이든 선전해서 코리아의 축구 위상을 높이고 우리가 응원을 통해서라도 축구로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석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델리가게 에서 종업원들에게 돈을 줬다는 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 말마따나 만약, 멕시코가 지고 코리아가 이겼더라면 주인은 노스 코리아도 코리아는 코리아 라며 당연히 종업원들에게 돈을 내라고 했을게 아니냐며 “노스든 사우스든 어찌되었든 코리아는 코리아 아니냐?”고 묻던 리카르도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언제쯤이면 노스니 사우스니 하는 구별 없이 그냥 코리아 라고만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