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한국 MBC 의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고, 밀리언셀러 가수 김건모가 2차 공연만에 탈락자가 되었지만 다시 기회를 얻게 되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논란이 일 때만 해도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허나 중단 되었던 프로그램이 담당 PD를 교체하며 다시 시작되고 임재범이란 가수가 출연한다고 했다. 오랜 전부터 그의 노래를 들어 왔던 나는 가수 윤복희씨가 자신의 노래, <여러분>을 부른 그의 노래를 완벽한 재해석이었다고 극찬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임재범의 <여러분>을 보고는, 프로그램에 매료(魅了)되어 지금은 <나는 가수다>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가수들의 노래에 순위를 매기고 탈락자를 선정하는 포맷이 순수 예술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여전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출연한 가수들이 혼신(渾身)의 힘을 쏟으며 경연준비를 하고, 수십년이 넘도록 수 많은 무대에서 수 많은 관객들을 만나온 기라성 같은 가수들도 탈락자가 나오는 2차 경연 무대의 청중 평가단 앞에 서서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들을 보며 목사로서 여러 가지 감회에 젖어 보았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이나 주일 예배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나 한 주간동안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공연과 설교라는 점에서, 또한 그 준비한 것을 청중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좋아 하는 가수들이 이미 자신들도 들어보고 불러보아 익숙한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목사의 설교는 왜 저만큼의 감동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목사들의 설교가 다 그렇지’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받는지, 심지어 청중들을 설교시간 내내 시계를 들여다보게 하거나 아예 꾸벅거리게 만들거나, 억지춘향식 아멘을 남발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을 떠올리며 한 사람의 목사로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많은 목사들이 <나는 가수다>출연 가수들만큼 열과 성을 다하여 설교 준비를 하지 않는것 아닐까? 다른 가수들이나 원곡자가 부른 경연 할 곡을 수 없이 들어보고 편곡자와 함께 곡 해석과 편곡의 방향에 대해 밤을 세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편곡이 완성되면 맹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여 온 몸으로 체득하고도 또 연습하며 몸 컨디션 조절까지 하는 만큼, 과연 목사들이 한 편의 설교를 위해서도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까? 그렇게 준비하는데도 설교에 감화 감동이 없고, 깨우침은 커녕, 일말의 흥미도 유발시키지 못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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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울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면 상을 준다는 대회에 갖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백방으로 코끼리를 울리려 했지만 아무도 못했다고 한다. 마침내 삶에 찌들려 피곤해 보이는 한 남성이 나타나 코끼리에게 다가 가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이자 이내 코끼리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게 아닌가? 그 사람이 다시 코끼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더니 코끼리가 펄쩍 뛰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대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라 도대체 코끼리에게 무슨 말을 한거냐고 물었더니 그 남자가 대답한다. “코끼리에게 먼저 ‘나는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다’ 라고 말했소. 그랬더니 내가 불쌍했는지 코끼리도 눈물을 흘리더군요. 마지막으로 저는 코끼리에게, ‘나랑 같이 교회 개척 하지 않을래?’ 라고 말했더니 죽어도 하기 싫은지 펄쩍펄쩍 뛰지 뭡니까!”
이민 동포사회에서 개척교회를 섬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바쁜지 목사인 나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귀한 개척교회 사역의 기본은 한국에서 이민오는 교인의 공항 픽업을 시작으로, 살 집을 알아봐주고, 은행구좌와 전화 가설, 자동차 구입과 운전 면허증 발급, 자녀들 학교 입학 수속과 직장소개 등등 친인척도 성가셔 하는 일들을 자원하여 싫은 기색없이 감당해 줘야 하고 새벽기도회, 수요 기도회, 금요 기도회…그리고 심방과 각종 경조사에 불려 다니기 일쑤이니 “아~언제 서재에 앉보고, 언제 성경을 펴고, 언제 설교원고를 작성하냐, 안 돼~ !” 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바쁘다 하여도 카드에 출근시간 찍어야 할 일도 없고, 늦게 나온다고 핀잔주는 눈치봐야 할 직장상사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 안나는 개척교회 사역이라고 해도 목사가 하루 10 시간, 12시간이 멀다하고 등골이 휘어가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과중한 직무를 감당하고 있지는 않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한가로이 식사하는 손님들을 향하여, “목사님!” 하고 외쳐보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보는 지 실험해보면 이민교회 목사가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걸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각종 병자들을 고치시다보니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고 기록하고 있는데 나는 예수님보다 바쁘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바쁘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주일 설교 준비를 등한시(等閑視) 할 수 는 없는 일이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에 해 갈 숙제를 미루는 일보다, 장사하는 사람이 다른 일로 바빠서 팔 물건을 떼러 갈 여유가 없는 일보다 더욱 중차대한 일이 설교하는 일이다. 숙제를 해 가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지고, 인기품목의 재고가 동나면 매상이 떨어질 뿐이지만 영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신성한 사명인 설교는 식사할 겨를이 없을 지라도 기도로 준비하고, 묵상으로 준비하고, 독서로 준비하고 자나 깨나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깨우침이 어떻게 감동과 설복을 이끌어 낼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목사의 죄>란 책을 쓰신 운수 조정칠 목사님께서는 목사가 공금을 어떻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목사의 죄가 아니라 도둑놈의 죄일뿐, 목사에게만 책임을 물어야 할 죄는 바로 <설교 훼손죄> 라고 지적하신다. 목사가 교인들을 향해 사사건건 시시콜콜 간섭하는 잔소리로 시간을 때우려는 잔소리 설교, 목사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피우거나, 교인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생글생글거리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물타기 설교, 남의 설교집이나 인터넷을 뒤져 속성으로 완성하여 버젓이 자기 설교인양 하는 복사판 설교, 성경을 지맘대로 해석하여 지가 복음(?)을 늘어놓는 소설 설교가 모두 목사들만 지을 수 있는 설교 훼손죄에 해당한다.
경연에 임하는 <나는 가수다>의 출연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를 감상하고 선호도를 투표해 줄 청중들을, 눈에 띠게 현저한 태도로 한결같이 존중하는 것 같다. 자신이 살아 온 인생경험을 노랫말에 실어, 최선을 다해 진정으로 노래할 때, 청중들도 다 같은 인생사 희노애락이 주는 공명으로 감동을 받는다. 설교에 임하는 목사들이 <나는 가수다> 출연 가수들에게 배워야 할 태도는 바로 청중들을 진심으로 부터 우러나온 마음으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아무리 목사(牧師)라는 말이 ‘군사부 일체(君師父一體)’ 에 나오는 군주와 부모와 동일한 권위를 가졌다는 스승 ‘사(師)’라는 글자를 쓴다하여도 ‘나는 선한 목자라’ 라고 하셨던 예수님을 본 받아 스스로를 ‘목자(牧者)’라고 이해하든지, 자신을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여 부릴 ‘사’(使)라는 말을 사용한 ‘목사(牧使)’ 라고 이해하든지, 차라리 맡은 일에 충성하는 집사(執事) 같이, 양떼를 먹이는 일을 자기의 천직으로 알아, 스스로를 하나님의 집(The Household of God) 일을 위탁 받은 청지기로 알고 ‘목사(牧事)’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목사가 하는 설교는 얼마나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하고 잠꼬대같은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