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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론 뉴욕 맨해탄을, 북쪽으론 팰리세이드 절벽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뜬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저녁 노을이 떨어지는 허드슨의 강변에 몸을 누인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 태극기를 보면 목이 메고 바람에 날리는 성조기를 보면 울먹해지는 나는 진정한 코리안-아메리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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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운명..생과 사의 갈림길

글쓴이 : 재이 배 날짜 : 2010-08-03 (화) 04: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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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이다..”

 

이 말이 떠들썩했던 것은 모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에 쓰여졌을 때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미국 근대사를 바꿔논 록펠러가의  손자  넬슨 록펠러가 “내가 록펠러가의 창시자인 할아버지와 같은 7월8일에 태어난 것은 운명”이라고 해서 오랜동안 워싱턴가를 떠들석하게 했다.

 

떠들썩했지, 그 단어는 나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미친듯이 돌아가는 뉴욕의  매일매일을 즐겁고 감사(感謝)하며  겸손(謙遜)한 태도로  대하는 것은  여러 나라와 도시에서 생활하다  어느날  이곳에서 안주하는게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주 최근에 일어난 두 가지의 사건으로 인해 내가 삶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운명이다” 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지었다.

 

첫번째 일은  2주전 내가 몸담고 있는 의료재단  주간보호센터에서 18년을 허드렛일을  일을 하고 있던 ‘조셉’에게 일어난  사건을 목격한 후이다.

 

많은  전쟁용사와 모국인을 비롯한 의료재단에  가입되어 있는  멤버들은   미국 주, 연방 정부 의료보장 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수혜 멤버들은  살고 있는 자택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통역사, 영양사, 오락치료사 등 모든 전문인들이 헌신적으로 노약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이 세상과 작별을 하는 날까지 가족들의 도움없이 정부의 보조아래  운영해 나간다.

 

뉴욕 메트로 각 보로에 20개 주간보호센터가 있어  멤버들을  집앞에서 픽업을 해  센터로  모셔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고 필요하면 센터에서 진료를 받은후  자택으로 귀가 시켜 드린다.

 

베스아브라함 훼밀리헬스케어의 방계 기관인 씨씨엠(CCM) 의료재단은  브롱스 시가지에 제일 먼저 건립되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고 있다. 이곳에서  ‘조셉’ 은  청소와 모든 궂은 일을하면서도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는 적이 없고 모든 이들에게 항시 웃는낮으로 대하며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친절을 베풀었다. 정말 상상할 수없이 착하고 겸손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여름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 멤버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정원에서 바베큐를 제공한다. 그런 다음날  아침이었다.  오락치료사가 체크업을 하기 위해 창고에 들어간다고 하자 조셉 은 “나도 거들어야 된다” 며 합세했다.

 

그때 센터 정문의 한 직원이 오락치료사를 큰 소리로 불렀다. “탐, 와서 생일 축하 케익에 싸인 해줘” 하니까 탐은 “네가 싸인 해라”하고  큰 소리로 답변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내가 하면 빵집에서 매니저 싸인이 아니라고 불평하니까 네가 직접 와서 사인 해” 해서 탐은 돌아서고 조셉이 혼자 창고에 들어갔다. 순간  “펑”하는 굉음과 함께 창고 건물이  불길에 휩싸였다.

 

급기야 주간센터 빌딩에 불똥이 튀었고  주변 파킹장에 세워진 차들 일부까지 폭발 서슬에 파손되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빌딩 센터의 의사들을 비롯한 직원들은  멤버들을 신속하게 피신시켰다.

 

전날 바베큐를 한 후 넣어 놓은 프로판 개스통들이 밤새 창고 속에서 새어 나온 것이었다. 개스로 잔뜩 차있던 창고에 탐 대신 조셉이 자청해 들어갔다가 맥없이 쓰러져 버린 것이다. 출근중 파킹장에 들어가다 목격한 이날의 비극으로 일주일동안  조셉이  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생과 사는 한 순간인 것 같다.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의 돌연한 죽음을 누가 알았을까



 

두번째 사건은 이상기온인 화씨  94도에서 시작됬다. 우리 부부는 계획을 바꿔  롱비치를 향해 오랜시간을 걸려 당도했다. 소금기 도는  오후에 롱비치에서 오랬만에 먹은 해산물요리는 일품이었다.

 

남편과 비치에 놓을 의자를 들고 노을이 지기 시작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걸음을 빨리 했다. 이상기온과  더불어 거세진 파도는  하늘을 향해  붉은 빛으로 공중을 때리고  내 가슴을 한껏 설리게 했다.

 

나는 높이 올라 가는 늦은 오후에 볼 수있는 썰물과 시작되는 물살을 누구보다도 잘 타는 사람이었다.  들고 온 의자는 그냥 펴놓은 채 남편은 하얀 모래에 눈을 감고 있었다.  롱비치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격류에 걸맞게 우리들의 영혼조차 쓸어 갈만큼 시원하게 불어댔다. 

 

“너무 멀리가지 마라”하는 그이의 말을 뒤로한 채 보드를 머리에 이고 쏜살같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보드를 재빨리 배 아래에 깔았다. 쪼개지는 파도가  내 몸을 ‘철썩’ 때리고 보드에 매달린 내 몸은 공중으로 향했다가  폭탄같이 내려치는 하얀 물거품을 뒤집어 쓰고 바다 중앙으로 밀려 나간다.

 

파도를 타는 이  동작의 희열은 물을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극복한 후  오랜 훈련으로 얻어낸 최고의 즐거움이다.  바다에 들어갔다  피곤해지면 모래에 몸을 잠깐 눕히고  쉬었다가, 또다시 들어가길  3번을 반복했다.

 

3번째 나올 때는 저녁해가  꺾어지고  있었고 옆에서  같이 파도타기를 하던 청년들은 섬으로 자리를 옮겨 낚시를 하고 있었다. 잠이 깊이 든 남편의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이고 오는 길 차 안에서 여러가지 불평을 한 것도 미안해서 다시 한번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전  뛰어들어갈 때 본 사내아이나 청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물살은 최고의 격류로 변해  천둥치는듯한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잠에서 깨어났는지 남편이 망원렌즈를 끼고 내 사진을 찍고있는것이 보이는 순간  손을 들어 “Help!” 하며 소리를 질렀다. 

 

천둥소리를 내는 파도는 벼락같이 내 몸을 때리며 중심을 잃은 채 바다 가운데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 돌아오려고 수영을 하려는 순간 내 몸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고 다시 팔을 있는대로 들고 “Help!!” 를 외쳤다 .

 

그러나 거센 물 벼락은 몸을 더 몰아 내고 섬위에있는 남자들이 나를 향해 웃으며  장하다는 표현으로 엄지를 치켜올렸다.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남자들의 손가락을 마지막으로  나는 중심을 완전히 잃었다. 15분 정도  물살에 떠 올랐다 썰물에 밀리고 물을 먹고 살아남으려고 악을 쓰는 나를 남편을 비롯한 사람들은  “파도를 기막히게 잘 타는 귀재”의 모습이라고 여겼을뿐…

 

10시간후 병원에서 깨어난 후 그 사고현장 근처에서  ‘이상 기후에 의한 격렬한 썰물’  사고로 실려온 5명 중에 나 혼자 정신을 차렸다는것을알았다.  나는 아직 가지 않아도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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