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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론 뉴욕 맨해탄을, 북쪽으론 팰리세이드 절벽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뜬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저녁 노을이 떨어지는 허드슨의 강변에 몸을 누인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 태극기를 보면 목이 메고 바람에 날리는 성조기를 보면 울먹해지는 나는 진정한 코리안-아메리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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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 기획> 원칙에 입각하기

글쓴이 : 재이 V. 배 날짜 : 2011-06-12 (일) 12:49:11

“It is a principle.”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신데렐라’는 ‘팥쥐’로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이민 초기부터 좋아하던 영어 한 문장을 남편에게 써먹은 것이 화근(禍根)의 시초였다.

20대 후반 미국 굴지(屈指)의 기업에 입사한 유전공학도 남편 리차드는 30대 초반에 들자, 번뜩이는 창의력과 치밀한 전략으로 이사회 멤버들의 총애(寵愛)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바람의 사나이” 리차드는 곧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며 승승장구(乘勝長驅) 했다.

어느날 저녁, 리차드는 나를 레스토랑로 불러내어 이렇게 조용히 의논(?) 했다.

“정말 무식하고 돈을 위해 사는 우리 회사 회장과 아첨하는 무리들하고 5년을 일했어. 5년을 더 일할 계획이었는데 그러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회의(懷疑)가 들어. 이들과 계속 생활하면 나도 똑같은 날라리 인간이 될 것 같아. 그건 내가 살아가는 원칙(原則)에 위배되는 모욕적인 일이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리차드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면서 도덕성이 결여되고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회장단과 이사진들로 인한 그간의 고충(苦衷)을 털어 놓았다.

“저런 도둑XX! 당신이 만들어낸 기술특허(patent)들인데 하나도 크레딧을 주지 않고 자기들이 고스란히 삼켰단 말이야? 그런 자들을 위해 당신은 그동안 뭐가 좋다고 그렇게 죽어라 충성했어? 그 욕심많은 것들을 위해 바보 짓 그만하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

입에 들어가려는 포크를 테이블에 내동댕이치며 “연금이고 뭐고 연연해 할 것 없이 당장 그 도적들과 간신배들과의 인연을 끊어. 무엇보다도 원칙에 입각해야지!(It’s the principle)”하고 호기롭게 사직(辭職)을 종용(慫慂)했다.

며칠 후 남편은 자신이 원하던(?) 실업(失業)의 길을 시작했고 나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소크라테스의 부인과 맞먹는 악처(惡妻)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리차드는 내가 일이 잘 되고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잘 되고 있어. 내가 구상한 비지니스 원칙대로 잘 되고 있어.”

“그 원칙이라는게 뭔데?”

“내가 항해하고자 하는 바다에 깔아 놓아야 하는 커다란 그물을 오랜 시간 촘촘이 만들어 어떠한 고난과 과정을 거친 후에 때가 되면 들어올린다는게 원칙이야.”

하지만 그 ‘원칙’이 길어지자 도리없이 원칙이 미워졌다. 리차드가 원칙에 벗어나는 일이나 원칙에 어긋나는 비즈니스맨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원칙도 없이 일을 하는 그것들이 사람이냐?”고 전 회장단을 질책(叱責)한 것은 까마귀고기 먹은듯 깡그리 무시한채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의 푸념도 늘어 놓았다.

“당신이 한국의 강태공이야? 언제까지 그물만 깔고 낚시질만 하는건데? 원칙이 밥먹여 줘? 원칙 찾으려면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하든지, 산속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든지, 왜 장가는 가서 가족들을 거리에 나앉게 하는거야? 성삼문, 정몽주 다 원칙 지키다 목숨 날아간 사람인거 알아?”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이 딸린 내 목숨같은(?) 집이 날아간 후에도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원칙에 입각해서”만 고집하는 당당한 남편 앞에서 난 신내림 받은 사람처럼 따발총 쏟아내듯 퍼부었다.

 

엊그제 아침을 먹을 때였다.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폴란드계 아주머니가 하소연을 해 왔다. 문 앞에다 내놓는 깡통들을 어느날 ”제가 팔아서 쓰면 안될까요?”하고 허락을 받아 안면을 튼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빈 소다, 맥주 깡통이나 병을 마켓에 갖다 주면 돈으로 바꿔 주는데 이 달부터 마켓 직원이 ‘이 소다 브랜드는 뉴욕주에서 수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줄 수가 없다’고 해서 소다 깡통을 전부 버려야 할 판국이에요. 깡통 바꾸는 돈도 꽤 되거든요”라며 아쉬워했다.

나는 착한 아주머니의 마음을 달래려고 “고민할 것 없어요. 내가 변상해 줄테니 그냥 누가 집어가게 놔두세요” 하였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 리차드가 “잠깐만!” 하며 끼어들었다. “아주머니가 소다를 X&X 마켓에서 산 것이 분명하다면 당신이 아주머니를 그 마켓에 데려다 주고 같이 들어가서 바꿔 달라고 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은 짠돌이도 아닌데 그거 몇푼 된다고 바꿔 달라고 하는거야? 개솔린 값이 더 들겠네” 하고 손을 저었다. 사실은 마켓에 병 반납하러 가는게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은 단호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그게 원칙이야.(It’s the principle) 그 마켓이 동네사람들을 상대로 원칙을 무시한 장사를 하고 있잖아? 물건을 팔 때 분명히 빈병에 해당되는 디파짓을 계산했을테니까 반환하러 오면 응당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상인의 원칙이야. 소비자가 그냥 귀찮아서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소비자가 보호 받아야 할 원칙은 무너지기 마련 아니야?”

아주머니 앞에서 학교 교장선생님 훈육(訓育)하듯 하는 말을 무시하기도 좀 그래서 마지못해 일어섰다. 투덜대며 마켓에 가서 매니저를 찾았다. 그리곤 “무슨 일을 시정해야 될 경우 아무리 내가 옳다고 생각해도 절대 상대편을 공격하기보다는 상냥하게 부탁을 청하라”는 남편의 5분전 당부대로 떨떠름해 하는 매니저에게 상황을 ‘상냥하게’ 설명했다,

마침 바쁜 시간이 아니라서 여러 명의 캐쉬어들이 모여들어 매니저를 거들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봐 달라는듯 “이 소다는 코카콜라의 뉴 상품인데 뉴욕 주에서는 수거하지 않는다”고 한마디씩 해댔다. 모두가 한 패거리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아무도 따지는 사람이 없었는데 ‘저 쪼잔한 동양여자가 몇푼이라도 더 긁어내려고 억지부리는구만. 포기하고 이제 그만 가지?’ 하는 얼굴색이었다.

나는 ‘여기서 물러서면 안돼. 돈이 문제가 아니라 It ‘s the principle.” 하고 속으로 외쳤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에 입각해서 말인데 이 소다를 살 때 캔 하나마다 디파짓이 자동적으로 소다 가격에 포함되는지 확인시켜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입술이 댓발은 나온 매니저는 ‘기막힌 찐득이로구만’ 하는 표정으로 양 눈동자를 굴렸다. 마지못해 레지스터에 소다를 손님이 사가는 키(Key)를 넣고 그었다.

그러자 레지스터에 소다 가격과 12개 캔의 디파짓이 함께 파란 글씨로 나타나는게 아닌가. 순간 나는 로토에 당첨된 것같은 희열(喜悅)을 느꼈다. 그러나 매니저는 그 흔한 “쏘리” 한마디 없이 퉁명스런 얼굴을 하고 돈을 건네고 등을 돌려 사라졌다.

거금 3달러25 센트를 아주머니에게 쥐어 주며 우리 둘은 눈으로 얘기했다. “원칙에 입각하는거야” 그외의 나머지 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면서 ‘원칙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옳은 길임을 깨달은 것은 지금껏 얻은 큰 자산의 하나이다. 더불어 ‘원칙’을 지키고 살아가는 뉴스로 대표와의 인연(因緣) 역시 또 하나의 자산이다.

나는 7년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헬스케어기관 홍보이사로 일할 때 노창현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그 후 한인 미디어에서 잠시나마 일을 함께 하는 기회도 가졌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나 대내외적인 자리에서 본 노창현 대표는 항상 원칙에서 벗어남이 없이 올곧게 길을 걷는 이였다.

그런 노 대표가 이 세상의 유의미한 언론이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출범시킨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창간 일주년을 맞았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걸러져 모인다.(People goes through a filter)”는 말이 있다. 뉴스로에 모이는 이들은 바른 원칙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춘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분에 넘치는 ‘뉴스로 칼럼니스트’가 되어 멋진 필진들과 유대를 나란히 할 수 있음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感謝)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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