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너와 나와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가를 단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을 분리시키는 부정적인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새벽 두시였던 것 같다. 한 밤중 밖에서 울리는 싸이렌 소리에 잠이 눈을 떠보니 창문 밖에 환한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불이 난 모양이다.
베란다로 연결되는 소방 대피계단으로 나가보니 100미터 가량 떨어진 빌딩에서 작은 화염(火焰)이 쏟아지고 있었다. 큰 불은 아니었다. 불보다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너는 경찰인데 왜 여기다 차를 파킹했냐?” 소방대원이 경찰에게 소리쳤다.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우리 경찰이 먼저 달려왔는데 무슨 소리냐? 누가 불을 냈는지 조사를 해야겠다”며 경찰은 소방대원에게 악을 쓰며 맞섰다.
놀라서 잠에서 깬 터라 상황 판단이 금방 되지 않았다. 두 남자는 타들어가는 빌딩을 옆에 두고 불을 끄는 대신 한 동네에서 살며 그 동안 쌓인 감정의 불을 지르고 있었다.
소방서대원은 구세군교회에 다니고 경찰은 감리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평소에 경찰이 구세군 교회는 크리스찬 종교가 아닌 ‘집단’이라고 구박(驅迫)한 것에 대한 울분(鬱憤)이었다.
요즈음 뉴욕에서 9.11에 터져버린 불꽃이 엉뚱하게 현대판 종교 전쟁의 불꽃으로 번지고 있다. 9.11는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백악관과 펜타곤을 파괴 하려는 과정에서 뉴욕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며 거의 3000명을 사지(死地)로 밀어넣었고 그에 동반된 여러 이슈를 야기(惹起)시켰다.
▲ 테러 참사가 일어난 며칠후 사람들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www.americanday.com
재로 번진 쌍둥이 빌딩자리에 어마어마한 재개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즈음, 그 바로 코앞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는 것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디어들은 앞다퉈 시민과 전문가들로 하여금 토론을 붙이고 타운미팅이 열리는 모습, 찬성 반대의 시위를 하는 모습을 뉴스에 담고 있다.
급기야는 웃지 못할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렇게 전한다.
“ 뉴욕에서 택시를 탄 한 승객이 기사와 대화 도중, 기사가 무슬림이라고 하자 칼을 빼들어 끔찍하게 찔렀으나 기적적으로 목슴은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뉴욕 동포들도 이 기회에 한마디 해야 위상이 추락하지 않는 것일까? 모 방송국에서 9.11빌딩 옆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슬람교는 테러리스트를 길러내는 못된 종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포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공석에서 이슬람교와 무슬림을 매도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스스로를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소개한 이들은 한국미디어를 통해 모슬렘은 종교가 아니고 집단이라고 열변(熱辯)을 토한다.
얼마전 우리들의 자녀인 버지니아 테크놀로지의 조승희 청년이 벌인 총격사건을 떠올려 본다. 그의 행위로 모든 코리안-아메리칸이 '맹목적이고 광기어린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비난 받아야 할까?
▲ 그라운드 제로 인근 소방서 앞에 희생자앞을 추모하는 꽃다발들이 쌓여있다. www.americanday.com
9.11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테러리스트들의 종교를 빙자(憑藉)해 저지른 무지의 참극(慘劇)이다. 종교가 궁국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바대로 사랑이 사랑을 낳게 하고, 믿음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평화을 주게 하는 아름다움으로서 존재하여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신봉(信奉)하되 모든 종교를 신뢰(信賴)하는 사람들의 성숙한 모습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