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의 첫 십년이 지나고 밝고 힘찬 새해의 동이 튼다. 격동과 생존의 몸부림속에 시작된 한세기를 우리 모두는 지켜보았다.
▲ 2011년 1월 1일 새해 첫 태양이 대서양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신상철 기장 항공촬영
또다른 십년의 발돋음이 시작되는 이 싯점에 한 개의 단어가 머리를 맴돌기 시작한다. 카르마(Karma).
어머니는 쌀 한 톨도 귀하게 여기는 아주 가난한 집의 열한번째 막내로 태어났다. 덕성있는 미모와 당시 높은 학력을 지닌 덕에 “있는것은 돈 뿐이더라”는 아버지집으로 효녀 심청이 공양미(供養米) 삼백석에 팔려가듯 시집을 오셨다.
시집온 날부터 대가문의 맏며느리 종부(宗婦)로 고달픈 일생을 보내시면서도 밤이면 전등을 끌어 책을 보시던 어머니의 뒷 모습. “돌아가시던 순간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는 모습은 오랫동안 존경보다는 아픔으로 내게 남아 있었다.
당신의 부(富)와 영달(榮達)보다는 항시(恒時) 남을 먼저 배려하였으며, 수없이 가난한 사람을 거두고 그들에게 온정을 베푸셨다. 허나, 어린 내 눈엔 어머니가 베푼 것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신세나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웠을 뿐더러 차라리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에게 종종 “엄마는 바보야? 왜 항시 주면서도 당하고, 또 주고, 참고 견디는 짓만 해?” 대들었다. “나는 절대로 엄마같이 살지 않을꺼야”하고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으며 악을 쓰기도 했다.
‘제발 당신의 잇속을 좀 차리셨으면…’ 하며 애태우던 내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자비로운 음성으로 “내가 이루는 것이 있다면 다 너에게 갈 것이다”라고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이 까마득히 흐르고 어머니가 외우시던 그 말씀을 떠올리며 “아하, 어머니가 쌓으신 이 길로 내가 지금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조아리게 되었다. 내 어머니는 운명이 아닌 ‘영혼의 법칙/자연의 법칙’ 이라고 일컫는, 카르마가 주는 의미를 터득하고 실천한 분이었으리라.
카르마가 제시하는 ‘자연의 법칙’이 현존한다면 그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자가 있다. 20세기 말 ‘세기의 악마’인 버나드 메이도프이다. 희대의 사기꾼 메이도프는 각계각층의 사람 수천명을 20년동안 속여 650억 달러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사취(詐取)했다.
미국 연방법이 명시한 최장의 150년 감옥 생활을 하는 메이도프는 노스캐롤라이나 연방감옥에서 가슴을 치며 절규(絶叫)했다. 자신이 체포된 2년 후 똑같은 토요일 아들 마크가 맨해탄 아파트에서 옆방에 2살짜리 아들이 자고 있는 사이 금속 고리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아내 앞으로 “내가 없으면 당신이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유서(遺緖)를 써놓고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 끈에 목을 매단 메이도프의 큰 아들 마크난 아버지가 ‘폰지’ 라는 물거품으로 이룬 증권을 하면서 수천명의 투자자본을 속여왔다고 FBI에게 밀고했다.
그리곤 아버지가 월가 나스닥에 의장을 비롯하여 정치권과 연결을 하는 등 1억2600만 달러를 축적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메이도프가 살고 있는 맨해탄과 롱아일랜드 몬탁의 저택, 팜비치, 프랑스에 있는 휴양지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맨션이다. 260만 달러짜리 보석과 700만 달러짜리 요트, 1천만 달러 상당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현금만 1700만 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는 고백도 하였다.
인간이 만든 어떠한 형벌(刑罰)도 메이도프가 저지른 악행에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용서받지 못할 ‘화이트 크라임’도 아들의 죽음 앞엔 잠시 숙연해진다.
“내가 저지른 죄로 인해 자식을 앞 세웠다.” 자신의 죄값을 대속(代贖)하듯 자식이 목숨을 끊음으로써 메이도프는 평생 지옥에 있어야 하니까.
록펠러는 역사상 그 누구도 이를 수 없는 부를 축척하는 과정에서 ‘남의 피와 눈물을 짜냈으나’ 후세를 위해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에서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처럼 ‘영혼과 자연의 법칙–카르마’에 순응(順應)하는 자세로 그늘진 이웃을 돌보고 부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새해에는 더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