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코로나를 쫒아다니세요?”
중국에 있는 아들이 전화가 왔다. ‘코로나를 쫒아다닌다’는 말에 도리없이 웃고 말았다.
지난 1월 중순만 해도 북경(北京)에 있는 아들이 걱정이었다. 우한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에 확산된다고 연일 겁나는 뉴스가 도배를 하니 말이었다. 하필 중국에서 저런 일이 생길게 뭐람. 설 연휴 지나서 휴가를 내 한국에 오겠다고 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불가능하게 되었다. 중국 당국이 외국에 나갔다 오는 사람은 예외없이 2주간 격리(隔離)를 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이때부터 상황이 반전(反轉)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진원지인 우한을 일찌감치 고립시킨데 이어 환자 발생구역마다 강력한 봉쇄정책에 들어갔다. 확진자도 사망자도 많지만 기타 지역은 점점 안정 추세에 들어간 것이다.
아들도 그 무렵 재택근무를 마치고 사람들 왕래가 확 줄어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나간다고 했다. 친구들과도 서로의 집에서 만나 회식을 즐기고 운동삼아 스크린 골프도 하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작 아들은 우리가 걱정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에 들어온 우리는 17년만에 뜻깊은 모국의 겨울을 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코로나19라는 불청객으로 난리가 나고 우리도 훼방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2월들어 아들은 이틀이 멀다하고 전화를 했다. “한국 괜찮아요? 걱정되는데..”
그때만해도 한국엔 확진자가 20명도 안됐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이 문제지, 여기는 괜찮아”하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아들은 영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나다를까. 2월 19일 31번째 확진자가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두차레 예배를 봤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코로나 확산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자한당/미통당과 수구언론은 지금까지 중국 입국을 왜 안막냐고 쌍심지를 켜지만 중국은 이미 2월에 들어서면서 한국 등 외국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코로나19를 어느정도 봉쇄하고 있었고 방역노하우도 생겨 무분별한 외국 유입만 막으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다. 한국에선 수만명의 중국 유학생들이 돌아오면 코로나19가 더욱 퍼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그 무렵 중국에선 한국이 더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다.
불과 열흘도 안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는 나라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대구는 ‘한국의 우한’처럼 여겨지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로 세계 각국에서 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했다.
당초 3월 중순에 뉴욕에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이러다가 미국에서 문을 걸어잠그면 큰일이다 싶어서 일정을 당겼다. 하필 뉴욕행 비행기를 탄 3월 3일은 한국 여행자들의 입국검역을 강화하기로 한 첫날이라 잔뜩 긴장을 했지만 평소보다 더 느슨해 의아할 지경이었다.
무사히 뉴욕에 왔지만 사람들을 섣불리 만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막 온 사람들을 경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공연히 민폐(民弊)를 끼치기 싫어서 우리도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자가격리 비슷하게 있었다.
솔직히 난 미국이 더 걱정이었다. 입국때 경험했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승객들을 구분없이 뒤섞고 최소한의 발열체크나 문진(問診)도 없이 ‘어서옵셔’ 하는 식으로 너무 헐가운 입국심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서 마스크 착용 등 제대로 된 위생수칙을 지키고 있었는데 여기 와보니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나로선 이곳 사람들을 만나는게 더 두려웠다.
불과 일주일도 안돼 뉴욕 뉴저지는 물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나오는 등 본격적인 코로나19의 공포가 시작됐다. 마트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생필품이 동이 나는 등 마치 전쟁이라도 난듯한 분위기다. 중국인과 한국인을 경원시하며 증오범죄의 희생양으로 삼더니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이 거대한 진원지가 되고 있다.
트럼프정부가 유럽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고 드라이브인스루 검진시스템을 도입하네, 무료로 검진서비스를 제공하네 뒷북을 치고 있지만 초기 방역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버렸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1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곤 있지만 완치자 숫자가 더 많아지는걸 보면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국에서 코로나19의 패닉이 시작된 미국에 때맞춰 왔으니 아들이 “코로나19 따라다니냐?”고 한숨쉬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아들아, 코로나19를 쫒아가는게 아니라 우리가 다녀가면 잦아든다고 생각해다오.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훈이네의 미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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