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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선교사, 시인으로 가족과 함께 몽골에 살고 있다. <시인>이란 명칭이 더욱 마음에 드는 이유는 "깃털 같은 가벼움, 맑은 개울물의 낭랑함, 그리고 바람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몽골생활의 희노애락과 몽골인들의 이야기로 글벗을 만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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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가외 (後生可畏)

글쓴이 : 황선국 날짜 : 2011-12-06 (화) 02:07:55

얼마전의 일이다. 가족들을 태운 채 밤운전을 하게 되었다. 평소 잘 알던 길이라 편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아내가 ‘어! 어! 여보!’ 한다. 이상한 느낌에 무조건 브레이크를 밟으니 불과 몇 미터 앞에서 강판 화물칸을 단 커다란 트럭이 덮치듯 멈춰 섰다.

순간 등짝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가까스로 죽음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음을 알곤 머리칼이 쭈뼛 선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은 곤히 잠들어 있는데 한 마디 사랑의 말도 나누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뜰 뻔 했구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불현듯, 우리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부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느니라.” 정말이구나! 어째 오늘은 이렇게 아내와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잘 되었을까?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니라서 그랬는가 보다. 하여튼 우리 가족은 이렇게 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차가 있었음을 미리 감지하지 못한 실수에 대해 희생양을 만들어 체면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마디 떨리는 마음으로 뱉었다:

“자식, 미등이나 달고 다니지. 저 차 미등이 없네, 그지! 참 나쁜 놈일세! 어떻게 밤에 운전을 하면서 미등도 없이 다니는 거야?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한 시간 동안을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자식, 왜 미등을 안 달고 다니는 거야.”

미등(尾燈)이란 운전하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운전하며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특히나 빛이 없는 밤에 미등의 유무(有無)는 생명과 직결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배려해주고 존중하며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 것이 미등이란 얘기다.

다들 바쁘고 피곤하고 자기 인생 챙기기도 바쁜 터에 남을 배려할 여유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미등을 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 9년 전 강릉에서의 일이다. 관동대를 방문한 차에 싸게 이발이나 할 요령으로 구내 이발관을 찾았다.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큼지막하게 휘갈겨 쓴 한자성어가 눈에 들어온다:

‘후생가외’(後生可畏). 자리에 앉자 내가 묻기도 전에 주인장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후배를 존경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장은 지금 제기차기나 하고 모래장난이나 하면서 노는 까닭에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훗날에는 대부분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후배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하였다.

후생가외(後生可畏), ‘내 뒤에 오는 후배들은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혹은 ‘내 뒤에 오는 후배들을 두려워함이 옳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 구절은 본시 ‘논어’(論語)에 실린 글로 학문적인 성취의 맥락에서 공자님이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 급변하는 정보-과학기술 사회에서는 다방면으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온 가족이 목숨과 미래를 걸고 고군분투하는 해외생활에서는 차분한 마음으로 되새겨 봄직하다.

 

몽골에 오게 되면 대부분 비자문제니 사업문제니 법률문제니 하며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심심찮게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 말은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좀 더 직설적이고 정직할 것 같다:

‘선배들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십중팔구는 망합니다.’ 또 좀 더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선배들 말의 신뢰도는 그저 10-20%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여러 사람들의 얼굴과 말이 뇌리(腦裏)를 스치고 지나간다. 선배 말만 듣고 와서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느니, 이놈저놈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느니, 우리 국민성이 원래 그렇다느니....

그러나 간단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후생가외’(後生可畏)의 마음이 없다. 몽골 땅에 먼저 발을 내딛은 사람은 ‘후생가외’의 마음으로 마땅히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선배가 주는 정보에 따라 좌지우지(左之右之) 되겠지만, 불과 3개월이나 6개월만 지나도 선배가 제공한 정보들 중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다 파악하여 선배의 인격까지도 판단할 사람이 바로 후배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예나 체면을 다 팽개치고 자기 이익만 쫓아 사는 사람에게야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 있으랴마는 그래도 거친 타국살이에서 진정한 우정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말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의 마음이 우리 선배들에게 있었던들 오늘날 우리가 그 넓은 만주벌과 연해주를 일컬어 남의 땅이라 말하고 있을까? 후생가외(後生可畏)의 마음이 우리 선배들에게 있었던들 독도문제니 친일문제니 사대주의니 하는 말들로 우리가 얼굴 붉힐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음이다. 청컨대, 조금이라도 남보다 앞섰다 여겨지거든 부디 후생가외(後生可畏) 하시라.

 

후생가외(後生可畏)

강물은 뒷물에 밀려 흐르는 것이니

앞물이 이끌지 못함이라.

어버이에게서 물려받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니

대대로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지식과 기술이라.

앞을 내다봄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

환란을 면할 수 있고,

뒤를 돌아봄은 군자(君子)의 근심이라

수치를 면할 수 있으리라.

제 한 몸 보신하려 하니 삼대가 수치를 당하고

제 한 몸 영화를 누리려 하니 뭇 동포가 시름한다.

대대에 향기로운 이름 남기려 하옵시면

부디 후생가외(後生可畏)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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