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어.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수도 안하고 TV를 켰지.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이 별것 있겠어?
그래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문득 멈추고 말았지.
K모 방송에서 하는 "도전 지구탐험대"이런 프로그램 기억나?
장애인의 날이 며칠전에 지나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여학생이었어.
뉴질랜드에 가서 여러가지 스포츠를 체험 한 것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 놓았더군.
거기엔 그나라 시각장애인도 나오더군. 그런데 그사람은 시각장애임에도
불구하고 수상스키 세계챔피언이라고 하더라.
왜 우리가 장애인이 무엇인가 정상인과 대등한 일을 해내면
대단하다며 놀라잖아.
물론 금방 잊고는 하지만......
그런데 세계챔피언이라고 하니까 조금 달리 보이는 거 있지.
난 아직 수상스키는 커녕 그냥스키도 못타봤는데.....
암튼 우리나라 남자 탤런트랑 함께 이것 저것 열심히 하더라구.
마지막에 무슨 산인데...
이름은 기억이 안나고 아무튼 백두산 보다 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여학생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나도 눈시울이 떨리더라구.
왜 감동 있잖아. 서세원이 자주 쓰는 "미꾸라지 삼천마리가
가슴팍을 헤집고 들어온다..."
그런 거 말이야.
나도 산은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안가본 산이 없는데 차원이
다르더라구.
생각해봐 눈을 가리고 올라간다는......얼마나 힘들까?
난 다리가 아픈것 보다는 궁금한 마음에 돌아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빤히 보이는 길을 걷는 것도 힘든데 보이지도 않는 길을,
그것도 그 험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나 밥도 아침도 안먹었는데 배부르더라. 물론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라면을
두 개나 끓여서
먹었지만.....
그런데 더 압권인 것은 그 탤런트가 여학생에게 묻는거야.
"민경아...오빠가 민경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민경아. 넌 뭐가 가장 보고 싶니?"
대부분 이렇게 물으면 뜨거운 태양, 넓은 백사장....이런 것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 하잖아.
그런데 침묵이 잠시 흐른뒤.....민경이가 이렇게 입을 열더라.
"오빠. 오빠는 아름다운 자연같은 걸 저에게 보여주고 싶겠지만,
난, 내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요."
찡~~~하지 않냐?
나 울었다. 런닝셔츠로 눈물 닦으면서......
점심나절에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잠깐 나갔다가 왔지.
우리집 뒤에가 서울대공원이잖아.
공원가는 오솔길에 벌써 벚꽃이 다 지고 개나리만 조금 남았더라.
도로에 차들이 너무 많았지만 타고 있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마냥 즐거운가봐.
따뜻한 햇살에 소풍나온 아이들과 줄풍선을 머리에 두르고 재롱?을 피우는
아빠를 보니까
내가 꼭 시인이 된 기분이 들더구나.
4월이 잔인한 것은 이런 아름다움을 뒤에 품고도 그렇지 못한자들을
가슴아프게 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