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89)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425)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3)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25)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39)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08)
·훈이네의 미국살이 (108)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총 게시물 37건, 최근 0 건 안내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내사랑 단” 영화감독 김대실 <2>한동신이 만난 사람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2-01-10 (화) 14:36:56

 

<4.29>, <침묵의 소리(Silence Broken)>, <모국(Motherland: Cuba, Korea, USA)>, 잊혀진 사람들<A Forgotten People: the Sakhalin Koreans> 등 외면당했거나, 잊혀졌던 우리의 상처와 역사를 영화로 만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큐멘타리 영화감독 김대실(Dai Sil Kim-Gibson)을 만났다.

 

허드슨강과 조지 워싱턴브리지가 보이는 전망좋은 그의 아파트에서 이번엔 영화얘기보다 그가 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3년 전, 그의 곁을 떠난 남편 도날드 깁슨(Donald Gibson)의 초상화(肖像畵)가 벽을 메우고, 평소에 남편이 신던 신발을 고스란히 간직한 낮은 신발장이 인상적이었다.

 

남편 도날드 깁슨(Donald Gibson)과 회고록을 출판할 예정으로 몇 년간 함께 썼던 글이 탈고되기 전에 남편은 떠났지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함께 쓴 ‘어깨동무(Shoulder Friends)’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겠다는 약속을 하며 남편과 작별을 한 김대실감독.

‘어깨동무’의 원고 완성이 하루를 사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원고를 세상에 내놓을 출판사를 찾으면서, 한편 대화하듯 글과 시와 그림이 담긴 책, ‘Looking for Don: A Meditation’이 ‘어깨동무’에 앞서 곧 출판된다. 최근에 시작한 블로그 www.shoulderfriends.wordpress.com와 2월초에 Forrest Woods Media Productions에서 출판될 <Looking For Don: A Meditation>, 그리고 혼자 지내는 그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한동신(이하 한): 감독님의 아파트는 남편분의 초상화로 가득하네요.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는 직접 그리신 거예요?

김대실(이하 김): 응…. 단(Don)이 세상을 뜬 이후부터 그린 그림들이지. 그와 대화하듯 글 쓰고, 그의 모습을 그리고….단이 세상을 뜨고 이제 내 안에는 남편 단과 나, 이렇게 두 사람이 살고 있어.

 

인터뷰하는 동안 그이의 눈에는 자주 이슬이 맺혔다. “내 안에 남편이 있다”는 말이 가슴을 저며왔다.

한: 혼자 지내신지 어느 새 3년이 되나요? 언제 결혼하셨어요?

김: 1979년. 우리 둘이 1938년생 범띠니까 나이 마흔 한 살에 결혼했어. 그 때, 우리는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는데,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첫 눈에 반했다기보다는 서로의 존재 속에서 자신의 완성을 찾는 안도감, 내적인 평화와 기쁨이 있었지. 우리들의 삶은 ‘love affair’라기보다는 ‘life in love’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
한: 예, 저 역시 감독님이 NEH(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New York State Council on the Arts에서 일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김: 공무원이 되기 전에 Mount Holyoke College에서 가르치기도 했지. 아마 경력으로 말하자면 1962년 미국에 온 이후로는 교수, 공무원, 그리고 영화감독,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든 공통점은 항상 연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었기에 영화감독은 그 노력의 계속이라고 보면 될거야.

 

한: 감독님께서는 교수, 공무원, 감독이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어찌보면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감독으로서의 출발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김: 평소에 소외된 사람들이나 억압받는 사람들, 인종차별과 같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나의 신념, 철학을 꾸준히 펼쳐야 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어. 그러니까 교단에 서거나 공무원으로 시, 정부에서 일하거나 언제나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은 글로, 강연으로 발표하곤 했거든.

 

하지만 ‘영화감독 김대실’이 되기까지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글쎄..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우리가 결혼하고 난 뒤에 시부모님이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비상시에 쓰라고 5만달러를 우리에게 보내셨어. 내가 사할린에 강제노동으로 끌려간 한인들에 대한 사연을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단이 모금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부모님이 보내신 비상금을 우선 쓰라고 하기에 현금을 내 몸의 여기 저기에 감춰서 갔어. 내가 사명감을 갖고 뛰어 드는 일에 아무 것도 아까와 하지 않는 남편, 그리고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화감독 김대실이 있었을까? 하고 자문하곤 하지.

 

한: 어느 일간지에서 감독님의 인터뷰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감독님이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언제나 남편께서 하셨다면서요?

김: 맞아. 지금도 길을 나서면 코닥필름 100통, 그리고 촬영현장에서 필요할만한 비품을 챙겨 놓던 남편의 자상함을 생각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해.

   

한: 두 분의 사랑엔 남다른 끈끈함이 느껴져요.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남편의 매력을 여쭤보고 싶네요.

김: 다른 남자랑 다른 점이 있었다기보다는 남편 단은 한마디로 정직하고 매사에 공평한 남자였어. 영어로 말한다면 ‘He was a very honest and decent man!’ 한국식 표현으로는 ‘진국’이야. 우리는 결혼이후에 서로를 상대에 맞춰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없었을만큼 서로 알아서 행동하고 자유로운 상상과 생각과 공간에서 살았던 것 같아. 1986년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남편은 96세로 세상을 뜨신 시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먼저 죽으면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대단한 정신력으로 버텼어. 그래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될 무렵엔 그 정신력을 유지하느라 애쓰는 남편을 보며 힘든 부분이 있었어. 예를 들면, 언제나 남편이 와인 마개를 따곤 했는데, 그 일조차 힘들까봐 내가 참을성없이 후루룩 와인마개를 따면 남편은 자신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 듯 슬퍼했거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지. 지금 더 후회되는 것은 왜 내가 좀 더 참을성있게 남편이 따도록 기다리지 않았을까?....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아파.

 

한: 되돌아 보면 어떤 일이 크게 후회가 되세요?

김: 후회하자면 셀 수없이 많겠지만, ‘지금 입장에서 되돌아 본다면…’이라는 전제일 뿐이지, 다시 그 나이, 그 때와 똑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 간다면 그 때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누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후회할 일을 만들기 보다는 서로를 더욱 풍부한 인성으로 채워 주며 완전에 가깝게 도달할 수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한: 남편은 어떤 분이셨나요?

김: 참 자상하고 정의감과 공정함을 앞세우는 진실된 ‘인간’이었어. 그리고 독서광이었어. 언제나 책을 읽곤 했지. 죽기 5일 전까지 책을 읽는 책벌레였으니까. 그리고 건강할 때는 연장으로 뚝딱뚝딱 뭔가를 잘 만들었구. 우리 아파트도 이사와서 우리가 의논해서 새로 개조한거야. 뉴욕의 비좁은 부엌을 컨츄리스타일의 부엌을 만든 이유가 우리 부부에게는 항상 부엌의 테이블이 만남의 장소였으니까. 식사를 같이 한 시간보다 서로의 꿈과 의견을 나눈 시간이 더 많았고, 게임을 하고…, 아…그리구 우린 언제나 유머로 하루를 채웠어. 우린 한창 웃었고, 서로의 관심사였던 아메리칸 인디언,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지.

 

서로 독서량이 대단한지라 유익한 대화이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의견을 나눈 기억이 지금도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 (한동안 침묵이후)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Good morning, Don!”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아침인사로 서로의 살아 있는 환희를 확인한 다음에 나는 그가 좋아 하는 커피를 정성껏 만들어. 그와 나누던 대화가 그리울 때는 항상 그를 향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들이 나눈 추억을 되살리고, 비록 단의 육신은 없지만 그와 함께 살고 있어. 어린 아이처럼 깨끗하게 살다가 단의 곁으로 가는 것이 내 희망이야.

 

한: 이번에 출판되는 <Looking for Don: A Meditation>에 대해 애기 나누죠.

김: 이 책은 남편이 떠난 후, 그를 잃은 한 여인의 생활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하루하루의 삶이 슬픔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에 젖어 있는 투쟁이었다면 함께 사랑하며 지낸 우리의 30년의 추억 속엔 담긴 기쁨, 희열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죽음,’ ‘영생,’ ‘슬픔,’ ‘외로움’이 무엇인가를 공개하기도 하고, 아주 개인적인 추억이나 내 자신을 낯선 독자들에게 드러 내는 것이기 때문에 막상 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며 불안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런 의미에서 shoulderfriendswordpress.com의 블로그를 읽으면 서문과 같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거라 믿어. ‘Looking for Don’은 그리고 앞으로 출판될 ‘어깨동무’를 이해하기 위한 활짝 열려 있는 문(door)이 되기를 바래.

뉴욕=한동신특파원 dongsin.hahn@gmail.com

 

<꼬리뉴스>

연방정부 공무원에서 쉰살에 영화감독 데뷔

  

김대실 감독은 황해도에서 출생했다. 7세 되던 해, 서울로 이주했고, 1962년 도미했다.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Mount Holyoke College와 한편 연방정부 National Endownment of the Humanities, 뉴욕시에서 NY State Council on the Arts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1988년 지명(知命)의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격찬을 받은 다큐멘터리로 <4.29>(93)와 <잊혀진 사람들: 사할린의 한인들>(95), 그리고 책으로도 펴낸 <깨어진 침묵: 한국인 종군위안부>(99) 등이 있다.

김대실 감독 작품 연보

‘America Becoming(1991)’

‘4.29(1993)’

‘Forgotten People: The Sakhalin Koreans(1995)”

‘Silence Broken(1999)’

‘Wet Sand: Voice from LA(2004)’

‘Motherland: Cuba, Korea, USA(2006)’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