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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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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박완서선생님에 대한 추억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0-12-01 (수) 05:12:32

“박완서 선생의 경우는 이 분야에서 상당히 독특한 입지에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개성이 고향이시고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숙부와 오빠를 잃은 뒤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당시로서는 드문 젊은 여성의 개인사를 작품에 세밀하게 기록했다는 점이 아주 주목할만한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마는...”

최근에 한국전쟁문학에 대한 작가연구를 하고 있다는 영화감독과 박완서 선생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새삼 그 분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벌써 10년 전, 내가 운영하는 회사 ‘오픈워크’의 연례행사인 ‘한국여성포럼’에 연사로 오셨던 박완서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존경하는 근거만들기>라는 멋진 제목으로 뉴욕의 동포들과 만났다.

 
▲성우 고은정씨와 함께 한 박완서씨

다섯아이들을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학비와 용돈을 주는 남편을 보며 ‘만약 이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난다면....’하는 불안감으로 40대에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선생님은 신춘문예에 응모하리라 별르고, 식구들이 자는 한밤중에 이불 속에서 살금살금 쓰신 글이 데뷔작이자 대표작이 된 ‘나목(裸木)’이다.

특별히 남다르게 작가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남모르게 꾸준히 실천해 온 ‘이즘(ism)’도 없었다는 선생님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바로 6.25를 겪고 나서였다”고 하셨다. 전쟁이 바꾸어 놓은 자신의 운명, 가족의 비극을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로 쓰고 싶었다는 선생의 의지는 이후 40년 간 지속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피를 말리는 일이지만 고통스러운 경험도 글로 쓰고 나면 편해진 까닭에 이렇게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로 강연을 마치는 박완서 선생님께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큰 박수를 보냈다.

 

▲1999년 ‘오픈워크’가 주최한 <한국여성포럼>의 개회선언장면

‘한국여성포럼’은 뉴욕에 사는 동포여성들에게 사는 재미와 용기를 주고자 기획된 행사지만 빠듯한 예산으로 사실 유명한 연사분들께 큰 사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박 선생님은 먼 길을 마다않고 행사에 참석해 주셨다.

게다가 서울에 돌아가신 이후에도 뉴욕여행이 즐거웠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지인들을 통해 들을 때마다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다. 그 즈음, 서울에 갔을 때 선생님 댁을 간 적이 있는데 ‘우리 집을 찾아 오는 길’을 알려주신 것처럼 선생님은 한강이 내다 보이는 곳에 반고흐의 노랑색 집에 살고 계셨다.

선생님을 뵈러 간 그 날은 쾌청한 날씨였다. 날씨 덕에 마당에서 꽃 보며 차 마시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 댁 꽃밭은 마치 꽃들이 저절로 피어 있는 들판같아서 나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놀았다.

꽃이름이라고는 장미, 백합밖에 모르는 내가 “선생님, 이 꽃이름이 뭐예요? 저 꽃이름은요?”하고 물으면 귀찮은 내색없이 꽃이름을 하나하나 알려 주시던 선생님.

아이처럼 마당을 뛰어 다니다가 “선생님, 나는 백일홍이 이쁜 줄 모르겠어요”하면 “그런 한동신은 무슨 꽃이 좋은데?”하시거나, “난 꽃보다 나무가 좋아요”하면 “그렇구나, 한동신은 꽃보다 나무가 더 좋구나”하시던 선생님과 보낸 하루….

 
▲경기도 구리시 박완서선생 자택에서 고은정씨와 함께

세상의 구석구석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정신에 더하여 깊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실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그 날-허세와 위선이 설 자리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깐깐한 분이라 어렵겠다싶지만 얼마동안 얘기를 나누노라면 깐깐함보다 더 큰 소탈한 이면에 매료(魅了)된다.


“난 있잖아, 뉴욕에 갔을 때 소호를 걸어 다니는게 그렇게 좋더라. 너무 좋았는데 호들갑을 떨면 주책없어 보일까봐 참느라고 혼났어”하시며 호호 웃는 선생님의 천진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예쁜 꽃들에 취해 신이 났던 그 날, 꽃밭에서 찰칵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들국화가 가득 피어 있는 그림엽서를 보내 주셨다. 엽서에는 기운이 빠지는 날엔 입심 좋은 나와 수다를 떨면 기운이 날텐데..그리고 사진찍자고 조르던 내 말대로 사진찍기를 잘했다, 서울에 오면 우리 다시 사진찍자고 쓰셨다.

내년 봄에도 선생님은 그 꽃밭에 다시 씨를 심으며 생명의 종말이 또다시 피우게 될 건강한 생명력을 기도하실게다. 얼어붙은 한강이 풀리는 소리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감지(感知)하시고 언젠가처럼 서정주 선생의 시로 우리에게 봄을 알려 주시리라.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본격적으로 닥쳐 올 겨울, 세찬 바람에 내 마음의 강물이 얼지 않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진지함을 배우고 싶다. 그리하여 떨리는 손으로 봄의 문을 활짝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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