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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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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이유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1-09-02 (금) 00:05:42

“어이쿠, 단잠을 깨웠지요? 한창 잘 시간인 줄 알면서도.... 지금 런던은 몇 십니까?”

자는 사람 깨워서 시간을 묻는 이 사람은 윤호진 씨다. 뮤지컬 ‘명성황후’로 한국에 뮤지컬의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 한국 뮤지컬의 대부 윤호진 씨는 신나게 자는 나를 전화로 깨워 자신을 소개했다.

1996년, 런던에서 한국예술제 총감독으로 일하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내게 그가 부랴부랴 전화를 넣은 까닭은 런던에서 한국예술제가 열리는 기간 중에 ‘명성황후’도 바비칸 극장에서 상연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윤호진 씨에 의하면 런던의 바비칸 극장 관계자들과 얘기가 꽤 진척되었으니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상연 스케쥴이 조율(調律)되었으면 한다는 말끝에 “윤 선생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세계 초연은 뉴욕에서 해야 될 것 같아요”로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런던이 뮤지컬의 본산지니 뭐니 해도 뉴욕에서 부터 바람을 일으켜야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냐는 내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그는 “아 그래요, 그럼 뉴욕에서 만납시다”로 흔쾌히 응수했다.

그러니까 1997년 4월 중순, 뉴욕에서 윤호진씨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긴 얘기를 나눌 시간도 없이 곧바로 ‘명성황후’의 뉴욕공연에 대해 회의를 시작하고 바삐 움직여야 할만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스케일이 워낙 큰 공연이다보니 확실한 예산을 잡기가 힘들어 저으기 불안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오는 공연팀 2백여 명의 체재비(滯在費)가 큰 변수로 자리잡자 윤호진 씨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윤 선생님, 진짜 골치 아픈 것은 링컨센터의 노조멤버만을 써야 하니 인건비가 무시무시할거예요. 음향과 조명에 드는 인건비는 나중에 계산하더라도 우선 세트에 들어 가야 할 돈부터 따져 봐야 할 것같아요.”

만만치 않게 전개 될 비용을 염려하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윤호진 씨가 “내일 봅시다”하며 자리를 뜨며 돌아서는 축 처진 어깨를 보며, ‘런던에서 공연을 추진하던 사람을 괜히 붙들었나...?’로 슬그머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신 선생, 오늘 링컨센터랑 얘기 끝냅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는 윤호진 씨의 얼굴은 푸석푸석했지만, 어조만큼은 단호했다. “뉴욕에서 공연하려고 지난 몇 달간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해야지요, 합시다!”

마침내 97년 8월 ‘명성황후’가 뉴욕에서 초연되기까지 윤호진씨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서울과 뉴욕사이를 이웃집 드나들 듯 오가며 공연전반을 지휘하랴, 끝도없이 들어가는 예산을 마련하랴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이 와중에 ‘명성황후’의 타이틀 롤이자 간판스타인 Y를 교체하는 문제로 서울과 뉴욕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뉴욕공연을 위해 스타급인 Y보다는 성량이 풍부한 직업가수가 절실했던 윤호진 씨는 마침내 ‘왕과 나’에 출연했던 이태원을 기용했다. 돌아보면 지명도가 없던 이태원에게 타이틀 롤을 준 윤호진씨의 파격적인 결단이야말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뉴욕공연을 감행했던 그의 뱃심을 보여 준 셈이다.

   

“홍보비 총액이 15만달러라면서요?”

공연을 앞두고 뉴욕타임즈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케팅을 담당한 나를 향해 던진 질문이다.

뉴욕에서, 게다가 2천 8백석이나 되는 링컨센터 스테이트 씨어터(현 데이비드 코크씨어터)에서 열흘간 공연을 하는 극단의 홍보비라기엔 초라할만큼 빈약한 예산에 놀란 기자에게 “공연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던 윤호진 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날이야말로 오케스트라단원들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통장이 바닥이었던 날이었다. 요새 한국에서 스타가 된 박칼린 씨가 음악감독이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아버지가 한국분이고 어머니가 ‘파란 눈의 며느리’로 유명한 박칼린 씨는 당시 30대 초반으로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었다. 한국뮤지컬사상 뉴욕에서 최초로 공연되는 ‘명성황후’였던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꿋꿋하게 잘 견뎌 낸 대단한 여성으로 기억하고 있다.

‘명성황후’ 뉴욕공연은 빠뜻한 예산과 시차에 시달린 단원들의 강행군(强行軍)으로 버티며 치뤄 낸 버거운 잔치였다. 거듭되는 넌센스를 깨고 넘으며 마침내 성공을 거둔 뉴욕공연. 그 이후 ‘명성황후’공연은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다.

 

photo by 김치김

그 ‘명성황후’의 신화를 이룬 윤호진 씨가 의사 안중근의 서사시 ‘영웅’을 뉴욕에서 상연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나 뉴욕의 한인매체 기자들은 일제히 “찬사와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겨루어 손색없는 작품” 등 약속이나 한 듯 찬사일색으로 포장(包裝)하고 있다.

작은 나라 한국에서 인정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윤호진 씨의 창작력은 언제나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뉴욕에 도전장을 낼 때는 제대로 된 기획력, 즉 세계인의 구미에 맞는 뮤지컬을 만들어 그에 걸맞는 마케팅이 이뤄져야 한다.

 

photo by 김치김

초청된 인사와 한인관객들로 가득찬 첫 공연, 객석에서 터져 나온 환호에 28억의 제작비가 투여된 ‘영웅’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눈 먼 애국심에 묻힌 꼴이 되고 말았다. 작품에 대해 전문적인 분석이나 비평 없이 일제히 찬사로 도배(塗褙)하는 이 현상은 과연 무엇일까? 연출가 윤호진 씨의 말처럼 “공연 전회가 매진되도 11억을 손해 보는” 이 무모한 도전에 한국의 언론은 왜 합세하는 것일까?

한국창작뮤지컬은 아직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지 않았다. 링컨센터는 뮤지컬극장이 즐비한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뉴욕의 브로드웨이 63가에 있기 때문이다. ‘영웅’에게는 제대로 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분석과 정직한 평가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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