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애달픔.. 비통함.. 안타까움..
가슴속 깊은 심연(深淵)에서 터져나올것 같은 응축(凝縮)된 감정은 그러나 땅이 꺼질만큼 깊은 한숨으로 새어나옵니다.
비어스같은 언어의 연금술사라면 이토록 복잡한 회한(悔恨)을 뭐라고 표현했을까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사임을 뼈가 저리도록 실감합니다.
과거는 오늘이라는 선(線)으로 미래와 연결된 영겁(永劫)의 한순간임을 알기에 슬픔을 억누르며 이 글을 씁니다.
주인은 가고 없는 이곳에 객이 허락없이 끄적이는 까닭은 홀연히 가신 임과의 특별한 인연때문입니다.

한동신 선생님!
봄꽃의 화사함으로 활짝 웃으시던 임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새털처럼 가볍고 씩씩한 임의 목소리가 귓전에 쟁쟁합니다.
쌍둥이 조카손주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하셨지요
연말에 함께 다녀온 여행이 정말 즐겁고 보람됐다 하셨지요
사람냄새 듬뿍 나는 보석(寶石)같은 글들을 보고싶다 조르면
쌍둥이 아가들 추스르는 연말까지 기다려달라 하셨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새해인사를 묵혀두던 저에게
반갑게 전화 해주시며 따뜻한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뉴스로 여행단도 조직하여 세계 곳곳의 필진들과 해후(邂逅)하고
그늘진 곳도 보듬으며 세상의 의미있는 일도 해보자 하셨지요
모든 것이 부족한 저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지요
노대표의 건강이 항상 걱정이라며 친누님처럼 챙겨주셨지요.
한동신 선생님!
임께서 계시지 않는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급해서 그리도 서둘러 가셨습니까.

2004년 6월 어느날,
황우석 박사를 초청한 플러싱의 행사장에서 임을 처음 뵈었지요.
한국의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의 명사(名士)일망정
임이 아니었다면 ‘세계의 수도’ 뉴욕에서
그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기사 한꼭지를 썼을뿐인데
마음 한켠에 특별히 간직하셨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2010년 9월 어느날,
맨해튼의 사찰음식제에서 우연히 마주친 제게
6년여전 기사 얘기를 꺼내며 늘 고맙게 생각했다는
임의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임과의 인연은
뉴스로를 통해 더욱 끈끈해졌고
차돌처럼 단단해졌습니다.

뉴스로에 대한 임의 사랑과 열정은
운영자인 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의 칼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필진들을 추천(推薦)하고
뉴스로를 전방위로 홍보하는 몫까지
실로 아가페의 애정을 기울이셨지요.
뉴스로를 만든 것은 저였지만
그것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온전히 임이셨습니다.



한동신 선생님!
임의 환한 얼굴이
임의 정겨운 목소리가
한없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임은 떠나갔지만
임의 글은 우리 옆에 살아 숨쉬고
임의 사랑을 추억하며 영원할 것입니다
부디 영면(永眠)하소서
2013년 1월 16일 새벽 노창현

photo by D C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