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솎다 보니 ‘장미희’라고 찍힌 이름아래 ‘사단법인 한국영화배우협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이 또박또박 적힌 명함이 눈에 들어 온다. 1992년 아시안 시네비전과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의 전설적인 여배우들’ 오프닝에 참석해 주었던 장미희와 주고 받았던 명함일게다.
‘한국의 전설적인 여배우들’은 당시만 해도 뉴욕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터라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여배우가 최고다 싶어 시작한 기획(企劃)이었고, 한편 한국에서 빌릴 수 있는 프린트 사정을 감안해 ‘영화에 나타난 한국 여성의 역할의 변천사’를 소제목으로 마련한 영화제였다.
최은희가 열연(熱演)한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김지미가 주연한 ‘티켓,’ 강수연의 대표작 ‘씨받이’ 등 10편의 영화가 선정되었고, ‘황진이’의 타이틀 롤을 맡았던 장미희는 그 당시 바쁜 스케쥴을 접고 어렵게 뉴욕나들이를 해 준 잊지 못할 여배우다.
영화제가 시작될 무렵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홍성표 부장은 영화제에 참가할 수 있는 배우들의 명단을 통보하면서 “장미희씨의 경우 퍼스트클래스는 당연하구요, 그리고 샤프롱이 동반되구요...그리고..”...‘그리고~’가 장미희의 이름아래 줄을 이었다.
영화진흥공사측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미희의 요구를 다 들어줘야 했던 이유는 뭘까. ‘장미희’라는 이름에는 그녀의 요구를 다 들어 줘야 할 것 같은 야릇한 그 무엇이 감돌고 있다.
장미희가 누군가. ‘겨울여자’아닌가. 기대를 갖고 가봐야, 그렇고 그런 영화가 판치던 70년대 한국영화판에 신선한 눈빛과 그 찰랑대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구닥다리 성관념(性觀念)에 찬물을 끼얹으며 우리 앞에 등장한 장미희. 겉으로는 모범생인양 으시대는 우리 여대생들은 ‘이화’의 탁월한 의상감각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자유분방한 내면을 흉내내느라 바둥거렸다.
장미희의 줏가가 높아 갈수록 장미희를 둘러싼 거짓말같은 소문들이 안개와 연기가 되어 퍼지면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열을 올렸으며 소문은 ‘겨울여자’와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웬지 장미희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랬던 장미희는 이제는 대학교수로 영화인협회의 부회장자격으로 한국영화제가 열리는 뉴욕에 온다고 한다.
영화제 오프닝에서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인삿말을 하는 장미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여배우’가 아닌 교수로서 관록(貫祿)을 쌓아 가고 있는 열정을 지닌 영화인이었다. 몰려든 관객을 향해 평소의 그녀답게 구어체라기보다는 문어체(文語體)에 가까운 언어로, 말을 한다기보다는 속삭이고 있었다.
그녀의 나즉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모으고 있는 사람들은 장미희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그녀의 향기에 취해 있는 듯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박수를 하는 것도 잊은 청중들은 마치 꿈에서 깬 듯한 눈으로 장미희를 바라보았고, 장미희 또한 꿈꾸는 소녀의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를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장내 공기의 흐름에서 나는 장미희의 힘을 보았다. 사람들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도망갈 힘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날 정도로 갸날픈 그 녀였지만 그 무성한 소문에서 살아 남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 그녀에게 흐르고 있었다.
“글쎄요...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어요. 영화로 꼭 만들고 싶은 단편소설이 있거든요. 이청준씨의 ‘눈길’이라는 작품을 읽어 보셨어요?”
영화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소호에 있는 어느 찻집에서 모처럼 한가하게 우리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장미희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청준의 ‘눈길’이 어느 새 장미희 감독의 손에서 카메라 없이 한편의 영화로 펼쳐지고 있었다. 혼신을 다해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넋을 잃은 채 귀를 귀울였고, 우리말을 모르는 찻집의 손님들도 장미희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찻집에 들어 설 때만해도 눈이 올 듯 뿌옇던 하늘에서 어느 새 흰 눈을 펑펑 내리고 있었다.
창 밖에 수북이 쌓이던 눈과 장미희가 표정과 손짓으로 만드는 ‘눈길’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깊어 가던 그 겨울 저녁이 다시 눈에 선하다.
“그가 고향에 돌아 왔을 때 눈이 하아얗게, 아주 하아얗게 쌓여 있었어요. 저 멀리 보이는 오두막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 오르고 아-바로 그 집에는 노모가 기다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그 남자는 발걸음을 재촉하지요....”
서울이 고향인 내게, 눈으로 덮힌 고향이 있다고 속삭이던 한 여배우와의 추억(追憶)으로 내 마음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설국(雪國)의 아련함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