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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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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삼켰던 명창 안숙선의 춘향가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0-11-02 (화) 23:50:22

 

기분이 처지거나 울화가 치미는 날엔 안숙선 명창(名唱)이 부른 ‘춘향가’를 듣는다.

폭포를 제압하는 위력으로 열창하는 그의 소리를 듣노라면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이거니와 1999년 나흘간 계속되었던 뉴욕 공연이 끝날 때, 내입에서 저절로 나온 확신으로 가득찼던 내면의 소리-‘이번 공연이야말로 성공적이다!’의 자신감으로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소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전역에 한국문화예술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판소리 공연을 추진하고 싶다는 것은 나의 오랜 열망(熱望)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와 밀착된 판소리의 가락과 가사전달에 대한 해결과 소리하는 이들이 짬짬이 던지는 객담(客談)을 서양인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는 적잖은 고민이었다.

진심으로 바라면 이뤄진다던가. 판소리공연에 대한 기획서를 들고 뛰어 다닐 때 1998년 뉴욕 한국문화원의 오수동 영사가 “한번쯤 해 볼만한 일”이라고 격려하였고, “문화로 한국의 이미지를 세워야 한다”는 이해가 있었던 제일기획의 김천수 미주법인장이 큰 힘을 실어 주었다.

 

▲1999년 뉴욕 플로렌스굴드홀에서 열렸던 '명창 안숙선'공연 포스터<사진=제일기획 미주법인>

98년 겨울은 판소리공연 준비로 마음이 바빴다. 쉬지 않고 판소리를 들으며 나는 새삼 우리의 저력을 재평가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슬기란 이렇게 맛있고 저절로 어깨춤이 절로 나는 해학()이 있구나!

누가 유머를 서양인들의 전용물이라 했던가. 탐관오리들의 한심한 작태(作態)를 한 수로 누르는 여유, 무모한 폭력에 재치로 맞서는 지혜며 밉기만 한 놀부 심보도 해학으로 푼 휴머니즘...판소리의 충, 효, 우애, 사랑 가운데 나는 사랑을 택했다.

남원의 절개(節槪) 성춘향을 안숙선 말고 누가 제일 잘 알겠는가. 어쩌면 춘향이보다 더 고울지 모를 안숙선 씨는 남원 출신이다. 서울에서 처음 만낫을 때 할 줄도 모르는 전라도 사투리로 인사를 하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이쁜 안숙선 씨는 소리도 정말 잘했다. 그래서 뉴욕공연은 ‘춘향가’와 안숙선 씨로 결정이 되었다.

 

▲ 사진제공=안숙선 명창 

‘춘향가’공연은 음악의 전당인 플로렌스 굴드홀에서 나흘간 계속되었다. ‘춘향가’ 가사와 판소리역사 등 판소리에 대한 자료를 영어로 만들었고 제일기획은 더 할 수없이 아름다운 카탈로그를 만들어 뉴욕타임즈 등 주요 매체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는 가사가 영어 자막으로 처리되고 안 선생의 객담은 우리말과 영어에 능통한 손정미가 3시간씩 무대에 꼬박 앉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통역을 하며 서양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공연장에서 판매된 씨디 세트가 불티나게 팔렸고 제일기획의 대대적인 홍보 덕에 나흘간에 걸친 판소리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무려 6시간이나 되는 ‘춘향가’를 3시간으로 나누고 안숙선 씨는 마이크 없이 소리를 하다보니 매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에 공연만 끝나면 거의 혼절(昏絶)할 지경이었지만 나흘공연을 강행했다.

공연 마지막 날은 ‘이몽룡의 어사또 출두야!’로 클라이맥스였다. 걸인(乞人) 행색인 사위 이몽룡을 괄세했던 월매가 암행어사가 되어 등장하는 이몽룡의 출현에 겸연쩍어 쭈뼛대면서도 어사 사위를 본 장모답게 으스대며 입장하는 대목이 펼쳐지자, 안 선생의 멋진 연기와 소리에 관객들은 마음껏 웃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유쾌한 환대를 받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명창 안숙선은 “얼씨구나 좋을씨구, 지화자 좋네!”하며 겅중겅중 춤추는 월매가 되어 기염을 토한다. ‘춘향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자 관객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 “얼씨구나 절씨구!”를 함께 불렀다. 안숙선 씨에게 보내는 열광적인 환호에 막을 내릴 수 없었고 빨갛게 상기된 채 사람들과 악수하는 그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브라보, 안숙선!”

사람들의 외침이 점점 커질수록 극장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크게 쉬었다. 뉴욕에서 판소리 공연을 해보겠다며 적지않은 예산을 마련하느라 뛰어 다닐 때만 해도 우여곡절(迂餘曲折)도 많았다. 미국에서 처음 벌이는 판소리 공연이다 보니 내 뜻에 호응하는 사람들조차 모험이라고 염려가 컸지만 가장 조마조마했던 사람은 안숙선 씨와 나였다.


대한민국의 명창 이름을 걸고 뉴욕무대에 서는 안숙선 씨는 자신의 공연이 자칫 판소리에 오점을 남기게 될까봐 조심스러워 했고, 한편 어렵게 성사된 판소리 공연이 실패로 끝날 겨우 서로가 못 할 짓이었다는 여파에 조바심을 치던 나였다.

 

▲ 공연후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by 손정미>

걱정이 커질수록 안숙선 씨는 시차에 시달리면서도 센트럴파크에서 매일 8시간 연습했고 나 역시 99년의 봄을 불면(不眠)에 시달리며 보냈다. 그 때 우리가 함께 보낸 땀과 눈물은 헛되지 않았고 진하디 진한 긴장을 같이 겪은 안숙선 씨와 나는 여전히 동지로 지내고 있다.

안숙선-그와 함께 다시 뉴욕에서 신나게 한바탕 판소리마당을 펼치고 싶다.

* 이 칼럼은 뉴욕중앙일보 2004년 11월 9일에 실린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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