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의 장례식은 주말인 11월 5일 오전 11시였다. 같은 날,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도 행사가 있었다. 일년에 두번밖에 없는 야유회 겸 기도회 모임을 농장에서 가진 것이다. 마음껏 즐기고 삼겹살 구워 먹으며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모처럼의 나들이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몸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 싶었다.
남아공에서의 장례식 참석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장례식이 로스텐버그 쥬니어스쿨(Runstenburg Girs Junior School)의 홀에서 열린다고 해서 의아했다. 보통 장례식하면 사설 장례식장이나 교회, 병원 등이 생각나는데 학교에서 하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크리스티나의 큰 딸인 앨리가 로스텐버그 쥬니어스쿨의 7학년 졸업반이다. 7학년 전 과정을 이곳에서 마쳤으니 학교에서 장례식을 도와주는 것이겠거니 생각도 해보았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론데보쉬 주니어스쿨(Rondebosch Boys Prep School)에서도 학생의 가족이 상을 당하게 된다면 학교에서 가족을 위해 장례식를 열어준다고 한다.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경조사도 함께 하는 남아공의 학교들. 많은 론데보쉬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에 붙이는 스티커가 있다. ‘Proud of Rondebosch Family’. ‘론데보쉬 패밀리의 긍지’라는 단어가 단순히 말로만 그치는게 아니라 진실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장례 분위기는 한국과 또한 많이 다르다. 상주가 곡을 하는 것이야 우리네 풍습이라 해도 모두가 검정색 정장을 착용한 가운데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장례식이라기보다는 떠나는 이를 위한 조용하게 애틋한 마음을 나누는 콘서트같은 분위기였다.
▲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크리스티나의 상패
사실 장례식 참석을 앞두고 남아공 문화를 몰라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신경이 쓰였다. 조심스럽게 검정 정장에 약간 밝은 셔츠를 입었다. 그런데 막상 장례식장에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히 짐작했던 고정관념을 깨게 했던 것이다.
아직 젊은 엄마가 급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만큼 결코 호상(好喪)이 아니었지만 추모객들의 옷차림은 평상복이나 다름없고 빨간색 등 화려하기도 하면서 단아한 복장이었다. 화장까지 곱게 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상주와 유가족들이 눈물을 펑펑 쏟지는 않을까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충혈된 두 눈 이지만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맞아 주었다. 오히려 조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놓치지 않고 가볍게 뺨 인사를 하거나 포옹을 하며 서로 위로와 답례를 주고 받았다. 유가족이나 조문객이나 모두가 예의바르게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만약, 필자라면 손님들을 어떻게 맞이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내리고 먹지도 입지도 않고 방에 틀어 박혀 울음을 터뜨리고 있지는 않을까. 과연 저들처럼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꼿꼿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으며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위로차 온 조문객과 함께 한 엘리(왼쪽)
손님을 배려하는 중심적인 사회라서일까. 혹은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문화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른 것일까. 슬픔을 받아 들이는 방법이 다른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 크리스티나의 약력과 순서가 나온 장례식 팜플렛
진행 순서는 로스텐버그 합창단의 헌사(獻辭)로 시작한다. 그녀의 생애에서 하지 못한 일들,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업적들을 조용한 음향 효과와 함께 보여 준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메시지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딸, 앨리와 아들이 떠나는 엄마를 위한 피아노 연주는 더욱 구슬프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출생부터 최근까지 생전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한 번 태어나서 마치는 한 사람의 생애를 보는 것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인생의 무상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렇게 잔잔한 애도의 물결이 넘쳐흐르는, 차분하고 아름답기 까지 한 장례식을 처음으로 지켜 보았다.
조문객들을 위해서 로스텐버그 스쿨은 따뜻한 차와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허례허식을 느낄 수 없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고 조문객의 위로에 감사하는 학교의 배려,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례 문화가 아닐 수 없다.
<하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