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올림픽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4년 마다 한 번씩 벌어지는 거대한 쇼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올림픽은 분명 흥미있는 이벤트이지만 대한민국은 열광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올림픽이 마치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건인양 난리장판굿을 친다. 왜 이렇게 올림픽에 목숨들을 거는지 모르겠다. 올림픽과 그들의 삶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발톱의 때만큼도 없는데도 말이다. 간접적인 연관성도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
그들에겐, 그들의 나라 대한민국엔 올림픽 따위보다 100배 중요한 사회적 의제(議題)가 널렸다. 진짜 그들의 삶에 중요한 문제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놓고 경기중계를 보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나 쓸데없는데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하다. 올림픽을 둘러싼 사회현상은 상식과 합리의 사고가 아닌 비이성적 편견을 기반으로 한다. 런던에서 진행 중인 이번 올림픽도 예외가 아니다.
올림픽과 전시체제
대한민국에 있어 올림픽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일단 구사하는 용어들이 살벌한 군사용어나 삭막한 단어 일색이다. 대한민국 올림픽 “군단”은 “선전”을 다짐하는 “출정식”을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태극 “전사”들이며 이들은 반드시 금메달 “고지”를 “점령”하거나 “탈환”해야 한다. 홍명보 “사단”을 향한 열망도 후끈하기 그지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겐 불굴의 투지로 만리장성을 넘고 후지산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를 평정한 후 당당히 “개선용사”로 귀국해야 할 매우 부담스런 사명이 주어진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 장교출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좌우에 연예인끼고 씨발스 리갈 간빠이하다 꼬봉의 총탄에 사요나라한지 30년이 넘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동창 둘이 대통령직을 나눠먹으며 호령하던 시절도 20년전 이야기다. 군사문화의 잔재(殘滓)에서 벗어날 때도 한참 지났다. 올림픽을 그냥 스포츠 이벤트로 가볍게 즐기면 적들에게 나라가 무너지냐? 왜 그렇게들 악에받친 정서와 핏발선 아우성으로 3차 세계대전하듯이 올림픽에 광분하는가.
금메달, 금메달, 금메달
대한민국 선수들의 시상식 광경에서 가끔 엽기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이들은 금메딸을 따도 운다. 은메달을 따도 운다. 금메달을 따면 감격에 복받쳐 운다. 은메달을 따면 설움에 겨워 운다. 참 한많은 민족이다. 은메달을 따면 무슨 대죄나 지은 듯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선수들도 있다. 금메달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생긴 병폐(病弊)다.
올림픽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태도는 그야말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표현에 딱 맞는다. 한국 언론의 순위집계 방식도 엽기다. 은메달을 100개를 따도 금메달 1개보다 낮게 평가한다. 전체 메달 숫자가 한국보다 많아도 금메달이 부족하면 한국보다 못한 성적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종합순위를 높이려는 노력이 안쓰럽다.
우연히 한국 TV 채널에서 올림픽 특집 방송을 목격한 적이 있다. 진행자가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염원하는 멘트를 날리며 하도 금메달, 금메달 노래를 부르길래 일부러 세어 보았다. 한 꼭지의 올림픽 관련 소식을 전하며 그 진행자는 무려 10차레 이상 금메달을 언급했다. 정말이지 금메달 사랑이 정신병적 집착의 수준이다.
정작 IOC는 공식적인 메달집계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쓰잘데기 없는 짓은 하지도 않는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금메달 숫자를 서로 묻고 확인하는 광경은 진짜 정상이 아니다. 그 인간들이 공동의 사회문제로 그 만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단 훨씬 괜찮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올림픽과 국력
올림픽 성적이 국력을 상징한다는 농담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림픽을 언급하며 동원되는 국력은 허위의 상징이다. 조금만 생각을 합리적으로 해 보자. 도대체 어떻게 올림픽 성적과 이른바 국력이 연관성을 갖는가. 스포츠 경기 성적으로 국력을 가늠하는 행태는 국력이 약했던 나라의 열등감에서 시작된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섯 나라를 빼곤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보다 못한 순위(한국 언론식 집계 방식)를 기록했다. 이 중엔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캐나다, 노르웨이, 스위스, 인도같은 나라들도 있다. 이 나라들이 대한민국보다 금메달 숫자 딸린다고 국력이 허약한 나라냐? 같잖은 농담 좀 그만해라.
집단주의와 애국주의
집단주의와 애국주의가 빚어내는 광경도 봐주기 지겹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외국 선수들은 공공의 적으로 대접받는다. 그들에게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저주를 퍼붓는다. 혹시라도 외국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에 승리하면 이를 두고 금메달을 “뺐겼다”고 표현한다. 외국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를 협박해 삥을 뜯은 것도 아니고 그들도 최선을 다해 승리한 것 뿐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집단정서를 투영(投影)해 난리치는 광경도 불편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우리 금메달이 몇 개다는 식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개념의 혼동에서 비롯된 완전히 틀린 말이다. 우리가 금메달을 딴게 아니라 진종오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집단과 개인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극렬한 경쟁을 불사하고 지역대립, 계층대립, 세대대립, 성차별로 날을 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올림픽만하면 갑자기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된다. 우리라는 광의의 개념은 비판의식을 희석시키고 은폐한다.
올림픽만 하면 대한민국은 권력을 부당하게 휘둘러 치부한 정치인, 탈세와 편법증여를 일삼는 재벌 회장, 정리해고를 당해 길거리에 나않게 된 월급쟁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 모든 사람들이 “닥치고 우리”가 된다.
역사속에서 독재정권들이 스포츠를 체제유지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경쟁 스포츠 대회는 실재 현실에서 작동하는 그 모든 불의와 부정을 우리편 화이팅의 구호속에 묻어 버린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도 그런 전근대적 체제에서 훈련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과 스포츠 강국
올림픽 기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듣는 말이 스포츠 강국이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이라는 거짓말은 이명박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개소리에 버금가는 개뻥이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다량의 메달을 획득하는 이유는 스포츠 강국이어서가 아니다. 태릉 선수촌으로 대표되는 철저한 엘리트 선수 양성 정책 덕분이다.
엘리트주의 스포츠 정책이 불러온 부작용은 그간 신물나게 목격했다. 대학 특례입학, 병역 혜택의 구조속에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거의 모든 종목에 승부조작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디 그 뿐이냐 오로지 운동밖에 할 줄 모르는 사회부적응자를 양산한다. 한줌도 안되는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환한 웃음 뒤엔 경쟁에서 낙오해 인생전체가 망가진 무명 선수들의 눈물이 겹쳐 있다.
심지어는 운동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어린 소녀 선수들을 성폭행하는 더러운 짓거리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상습적으로 청소년 여자 운동선수들을 성폭행한 지도자가 자기는 룸사롱을 안가도 된다며 자랑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오바이트 쏠리는 대목이다. 큰 국제대회를 앞두고 늘상 일어나는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싼 잡음과 부모까지 가세한 파벌싸움도 대한민국국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올림픽에서 마저 소위 ‘전략종목’이 아닌 선수들은 그저 들러리로 방송 카메라 앵글 바깥에서 설움을 곱씹어야 한다. 엘리트 선수들이 광고다 방송출연이다 주가를 날리는 동안 이들은 열심히 노력한 운동선수로서 따듯한 박수 한 번 받지 못하고 잊혀진다. 이게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꼬라지다.
올림픽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 기간 중 꼭 빼먹지않고 등장하는 얘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비교다. 잘난 대한민국은 못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웃으며 우월감에 충만한 자위행위를 일삼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선수들 운동복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다는 열악한 환경을 들먹이고 메달경쟁에서 대한민국과 비교가 안된다며 자랑질을 한다.
지금 안그래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굳이 대한민국까지 나서서 한 몫 거들 필요는 없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봉건적 왕조국가로 평가하며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힘든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나라의 운동선수들에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번 올림픽에서 역도종목에 출전한 량춘화 선수의 경기 장면에서 나는 눈두덩이 뜨듯해졌었다. 량 선수가 안간힘을 쓰고 역도 바벨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마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 나라의 숨통을 조이는 서구국가들과 대한민국의 압력에 힘겹게 대응하는 모습과 닮아서였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웃으며 스포츠마저 체제선전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인데 대한민국도 그 점에선 도찐개찐이다. 대한민국은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만 본다. 대한민국은 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할 때 카퍼레이드까지 했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들이 수령동지에게 영광을 돌릴 때 대한민국 선수들은 대통령 각하에게 땡뀨를 날렸다. 지금도 올림픽 선수단 국민환영대회를 뻑적지근하게 개최하는 대한민국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더 이상 올림픽은 애초의 구상대로 전 세계인이 우정을 나누는 지구촌 축제가 아니다. 모든걸 상품화시켜 이윤을 뽑아내려는 속성을 가진 자본주의는 올림픽에마저 상술(商術)을 도입한지 오래다. 지금의 올림픽은 돈독 오른 IOC와 스폰서 기업, 방송사들이 밀어주고 끌어주며 구축한 돈지랄 행사다.
이런 올림픽에 인질잡혀 열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딱하기 그지없다. 올림픽에서 당신들이 얻을 것은 눈요기뿐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당신들에겐 허접한 대한민국의 잔인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그냥 스포츠 경기로서 올림픽을 마음껏 즐기되 대~한민국 어쩌구하며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말기를 권고한다.
사족 1: 올림픽은 허위와 위선으로 범벅이 된 전지구적 규모의 쇼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은 운동선수들의 열정이 보여주는 매혹적인 장면은 멋있다는 것이다. 오직 이 한가지 의미만이 내가 올림픽을 관람하는 이유다.
사족 2: 대한민국의 금메달이 몇 개니 오심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소식들엔 관심없다. 나는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 축구팀을 응원한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최선을 다 해주길 바란다.
사족 3: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문대성의 몽타쥬를 끝내 보고야 말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밥맛을 걱정한다. 어쩌자고 부산 사하갑 주민들은 스포츠맨 쉽을 안드로메다로 이민보내고 싸가지를 밥말아먹은 저런 인간에게 금뱃지를 선물했단 말인가. 아무리 박근혜가 좋아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