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가게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재미있다.
건물 주차장에서 싸우는 사람들. 온갖 욕지거리로 치장하고 지나가는 고등학생들.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아이 엄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런 풍경 속에서 오롯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도 있다.
커플(couple).
토요일 오후, 게다가 날씨도 좋은날 참으로 솔로들에게는 가슴 미어지는 광경(光景)이다. 허리를 감싸고, 손을 맞잡고,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고. 사랑에 겨운 눈으로 행복과 설렘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있는 그들.
아, 씁쓸하다.
그래, 나는 솔로니까.
내가 커플일 때는 몰랐지만 솔로가 되고나면 느끼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 ‘나는 꽤 부지런히 돈을 모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데이트할 때 여자는 지갑이 필요 없어도 된다는 것도 다 옛날 말이지 요즘엔 지갑 안 들고 다니는 여자는 그저 무개념녀에 민폐녀일 뿐. 데이트비용도 어디 한두 푼인가? 영화 한편에 8~9000원. 파스타 집에서 한 끼에 9~10,000원. 커피 한잔에 5~6000원. 1인 기준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뽑았을 때다.
이 모든 것을 둘이 함께 하면? 데이트 한 번에 드는 최소비용 약 5만원. 더치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이좋게 번갈아 계산을 하다보면 그 비용도 꽤 어마어마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돈이 대수랴.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데이트 비용 말고도 돈이 세는 구멍이 또 있다.
‘옷.’
매일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남자친구에게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예쁘게만 보이고 싶은 게 여자들의 마음이다. 그러다보니 만날 때 마다 다른 옷,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려 ‘의무감’을 가지고 쇼핑을 한다.
그런데 솔로가 되어보니 데이트비용, 쇼핑비용이 고스란히 지갑에 남아있다. 지갑은 두둑하지만 나는 왠지 씁쓸하다.
둘. ‘도대체 왜 자기 남자친구 (여자친구) 얘기를 솔로인 나한테 하는 건데?’
연인과 싸우거나 연인과의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을 찾는다. 그런데 꼭 그 답답한 이야기를 듣는 쪽은 솔로다. 그런데 솔로들의 조언은 듣지도 않는다는 거. 아마도 솔로들의 조언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세상에 커플은 이미 다 깨져 솔로들의 천국이 되어있었겠지. 솔로가 되어보니, 나도 나의 연인 이야기로 여러 솔로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구나 싶어 갑자기 죄스러워진다.
셋. ‘내가 도대체 저 여자(남자)보다 못 난게 뭐야?’
꼭 붙어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여자(남자)는 애인이 있는데 난 저 사람보다 도대체 뭐가 딸려서 애인이 생기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을 시작했다면 이미 자신감이 점점 곤두박질 치고 있다는 징조(徵兆)이다. 그럴 땐 이렇게 위안을 삼는다. 내가 아직까지 혼자인 것은 날 진정으로 사랑해줄 영혼의 반쪽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넷. ‘연애하면 원래 몸이 점점 퇴화되는 것인가?’
입만 벌리고 있으면 앞에 앉은 연인이 어미새 마냥 음식을 먹여주는 커플들은 음식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수저도 들지 못할 만큼 어깨관절에서 심한 퇴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연인들이 하는 대화를 들으며 또 다시 나는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그들의 혀는 점점 짧아지는 퇴화과정을 겪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의 연애세포가 퇴화되어 가는 것은 확실하다.
“너, 그거 알아? 여자나이 스물넷까지 연애 한번 못 해보잖아? 그럼 어떻게 되게?”
“어떻게 되는데?”
“학이 되서 하늘로 승천한대. 조심해라 얼마 안 남았어.”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종종 하는 말이다.
내 주변에는 정말 연애 한번 해본 적 없는 친구들이 있다. 딱히 궁상맞은 것도 아니고, 딱히 모자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어릴 땐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 봐.”
가장 답답하고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촌철살인(寸鐵殺人) 한 마디. 만나란다고 만나지면 여태까지 솔로였을리가요....
이런 식의 가슴 후벼 파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저의 대답 몇 마디를 남기고 솔로들의 슬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위로차원의 글을 마칩니다.
1. 연애만 하면서 보내도 아까운 20대인데 남자친구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 않니?
- 네 저도 아까워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시간이 거꾸로 갔으면 좋겠네요.
2. 너는 왜 애인이 없니?
-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던데 그것이 실제라면 과연 어떤 원리일까’라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되어도 그 질문에는 답을 찾지 못할 것 같군요.
3.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뭘 하니?
- 예수님 생일에 왜 내가 데이트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고정관념을 깨세요. 저는 집에서 귤 까먹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