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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무덤(허광)’ 장기풍은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으로 15년 간 재직 후 은퇴하여 지금은 방랑여행과 글쓰기로 소일하고 있다. 미국 46개주와 캐나다 10개주 멕시코 쿠바 에콰도르 및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배낭여행했다. 특히 원주민지역 문화와 생활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14년 봄에 70일간 조국을 배낭여행했고 2017년 가을엔 45일간 울릉도와 남해안 도서를 배낭여행했다.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화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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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불편한 진실

뉴잉글랜드의 가을(6)
글쓴이 : 장기풍 날짜 : 2020-12-16 (수) 18:43:15

뉴잉글랜드의 가을(6)

"WELCOME ENGLISHMAN"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여행은 추수감사절에 하는 것이 제격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추수감사절 플리머스 여행을 바랬지만 올해도 일찌감치 기대를 접고 한 달이나 일찍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추석이 명절이지만 이곳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추수감사절이 명절이다. 현실적으로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히 추수감사절을 추석 대신 명절로 지내게 된다. 캐나다는 10월 둘 째 월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미국은 11월 셋째 목요일로 계절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곧바로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밝혀지고 연말분위기에 접어든다. 흔히 추수감사절은 플리머스에 상륙한 청교도들에 의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전설에 따라 플리머스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사흘간에 걸쳐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 전통 복장의 퍼레이드와 함께 전통음식 시식,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그리고 모든 박물관과 정착촌 등에서 각기 고유한 특별행사를 개최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플리머스에 모여든다. 추수감사절은 플리머스의 대목이다.


Thanksgiving-Brownscombe.jpg


 

미국인들은 그들의 전통인 추수감사절이 미국에 처음 상륙한 청교도들이 첫 해의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건국신화로 미화된 이야기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감사제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가을철 그해의 수확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축제를 거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석이 대표적인 추수감사제로 정착되었지만 고구려 이전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 때는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10월제가 행해졌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서양에서도 추수감사는 이미 유럽 각 지역에서 행해지던 축제였다. 청교도들이 떠나 온 네덜랜드의 레이던 주민들은 매년 103일 감사축제를 드렸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미국보다 53년이나 앞선다. 뉴파운드랜드에 살고 있던 영국계 이민자들은 1568년 마틴 프로비셔(Sir. Martin Frobisher)의 지도로 감사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다음해부터 월풀 목사의 인도로 감사절을 정례화했다. 또한 1600년 대 초 사무엘 드 샹플레인이 이끄는 프랑스 개척자들이 현재 메인주의 아카디아 지방에 정착했을 때 수확기가 끝날 무렵 그 지역 원주민들을 초대하여 해마다 늦가을 추수감사절 경축행사를 개최했다. 캐나다의 추수감사 전통은 그 후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계, 독일계 등 새로 온 이민자들도 그들 고유의 전통을 보태 행사를 더욱 다채롭게 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이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해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 한 해의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해 처음 시작했다는 미담은 사실이 아니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인류 보편의 전통인 추수감사절이 어디서 먼저 유래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각기 자기 민족의 전통이나 사는 곳의 형편에 따라 지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전통적인 추수감사제인 추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맞춰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휴일이 아닌 평일 참석하는 교인이 적자 많은 교회에서는 11월 마지막 주일 지내기도 한다. 이는 1904913일 개최된 당시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 4차 합동공의회에서 결정된 110년 전통으로 내려온다. 당시 결정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왕성한 교회의 발전에 감사하는 의미라고 하여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표시로 마련된 미국의 감사절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과 같이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추수감사절이 정해진 것은 1908년부터이다. 수확시기가 지난 한국의 계절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사대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개신교회 입장에서 보면 추석 때 차례를 지내는 것이 미신처럼 생각되어 별도의 감사제가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추석날 차례를 빼고 감사예배만 드렸어도 될 것인데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미국 추수감사절도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과 같이 11월 셋째 목요일로 지정되었다.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는데 3대 제퍼슨 대통령은 이를 오래된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국경일에서 제외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라 요세파 헤일이라는 여성이 16대 링컨 대통령에게 탄원하여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다시 국경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청교도들이 상륙한 플리머스 지역의 원주민 암파노아그 부족은 굶주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청교도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마사소이트 추장은 원주민 다른 부족이 백인들을 경계해 동맹을 맺고 백인들을 공격하려 했을 때도 철저하게 평화우호 조약을 준수했다. 그들은 백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씨앗과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전통적인 고기잡이법도 전수해 주었다. 또한 원주민들은 수확철이 되기 전 식량으로 사슴과 칠면조 등을 수시로 제공했다. 다행히 첫 해 가을 수확이 좋았다.

청교도들은 비록 53명밖에 생존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은인인 왐파노아그 부족 90명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었다. 원주민들은 감자, 옥수수, 칠면조 등 음식을 선물로 가져와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사흘 간 계속 먹고 마시는 추수감사 축제는 원주민들에게는 3만 년 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이에 따라 백인들도 원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사흘 간 푸짐한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생명의 은인인 원주민들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근본주의 칼뱅주의자들인 청교도들은 스스로 사탄에 대항해 거룩한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로 인식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했다. 2년 후 1623년 왐파노아그 부족의 많은 사람이 유럽인들에 의해 옮겨진 전염병으로 죽자 청교도 장로 조 마서는 이를 하나님의 뜻이며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고 설교했다. 이러한 백인들의 근본적인 시각이 바뀌지 않아 원주민들과는 세월이 흐를수록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마사소이트 추장이 죽고 백인들이 필립이라고 부르는 그의 둘째 아들 메타콤이 추장이 되자 충돌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청교도들이 충분한 무장을 갖춘 뒤였다. 1675년 벌어진 필립왕 전쟁으로 원주민들은 강력한 현대무기에 쫓겨 거의 몰살당하고 일부는 노예로 팔려가거나 캐나다로 피신하여 비버 모피 교역에 종사하게 된다. 청교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 멸망을 자초한왐파노아그 추장 메타콤의 머리를 높은 장대에 꽂아 무려 25년 동안 플리머스에 전시했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은망덕한 백인들이 상륙해 기진맥진했을 때 구해 줄 것이 아니라 도륙했어야 마땅했다. 추수감사절의 불편한 진실은 미국의 건국이념을 소위 청교도 정신으로 삼으려는 백인들에 의해 철저히 감추어지고 미담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신들의 건국 선조로 떠받들고 있는 청교도들의 플리머스 역사는 정작 이들의 본국인 영국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반면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은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무시되고 있는 제임스타운을 두 차례나 방문하여 조상들의 미국 개척을 기념했다. 즉 여왕은 1957년 제임스타운 상륙 350주년에 방문한데 이어 50년 후인 지난 20075월에는 5일 간이나 현지를 방문하여 큰 관심을 보였다. 어쨌든 링컨이 추수감사절을 연방국경일로 제정할 때는 남북전쟁으로 국민통합이 시급했던 때였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목숨을 걸고 일엽편주에 의지해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개척자정신과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그들의 신앙정신은 당시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가장 유용한 테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와서 4백 년 가까이 숨죽이고 살아왔던 원주민들이 미약하나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70년 매사추세츠주는 메이플라워호 상륙 350주년 축하행사를 준비하면서 당시 청교도들의 은인이었던 왐파노아그 원주민 후손에게 축사를 부탁했다. 그들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주정부는 원주민 후손 대표인 프랭크 제임스의 원고를 사전에 입수하여 그의 연설기회를 박탈했다. 그러나 그의 원고내용은 언론에 밝혀졌다. “오늘은 당신들을 축하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축하할 시간이 아닙니다. 내 동족에게 일어났던 일을 회상해 볼 때 가슴이 무겁습니다. 청교도들은 내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물건을 훔치고 옥수수, , 콩 낱알을 훔치면서 케이프코드를 4일간 탐험했습니다. 왐파노아그족의 위대한 추장이신 마사소이트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정착민을 환영했고 우정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말입니다. 50년이 지나기도 전에 왐파노아그족과 정착민 주변에 살던 다른 원주민들은 그들의 총에 맞아 죽거나 그들로부터 전염된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의 방식은 거의 사라지고 우리의 언어는 사멸되었지만 우리 왐파노아그족은 여전히 매사추세츠 땅을 걸어다닙니다. 과거는 변화될 수 없지만 오늘날 우리는 보다 좋은 미국, 사람과 자연이 다시 중요한 원주민의 미국을 향해 일합니다.”

 

지난 1975년부터 해마다 추수감사절에는 원주민들이 플리머스에서 반추수감사절’(Unthanksgiving Day) 행사를 열고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내가 추수감사절에 플리머스를 여행하고 싶은 것은 화려한 퍼레이드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절규를 현장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2005년 추수감사절 뉴욕에서 화려한 퍼레이드가 열릴 때 원주민 3천여 명은 그들의 권리운동 성지인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 섬에 모여 이날을 추수감사절이 아닌 추수강탈절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조상들이 백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로 기력을 차린 백인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원주민 뿐 아니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텍사스대 로버트 젠센 교수는 2011년 추수감사절 때 방종한 가족잔치판을 벌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자기 성찰적 집단 단식을 하는 국가적 속죄일’(a National Day of Atonement)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클리대 사회학교수 댄 브룩도 미국인들의 기억상실증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죄책감까지는 몰라도 무언가는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명분으로부터도 한참 멀리 떨어졌다. 1년 중 가장 많은 매출이 이루어진다는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가 말해주듯이 자본주의의 광란의 카니발로 변모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 저녁 가족파티가 끝나기 무섭게 백화점 앞으로 달려가 밤을 새워 줄을 서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마트 내 인파에 휩쓸린 사람들이 깔려 죽기까지 했다. 거의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은 이날 일 년 묵은 상품 재고를 거의 정리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수감사절은 모든 미국인들의 즐거운 명절이다. 특히 한국 이민자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조국의 추석명절같이 지내고 있다. 멀리 떨어진 가족들도 이날 모두 모여든다. 법정공휴일이기 때문에 조그만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이날 하루는 마음 놓고 쉴 수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정으로 고달프게 사는 이민자들도 많기는 하다.

 

버몬트대 제임스 로웬 교수의 지적은 이민자들의 경각심을 일으킨다. 그는 추수감사절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국경일이지만, 일부사람들은 이날을 미국사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기회로 여긴다. 추수감사절의 진실한 역사는 당혹스런 사실들을 폭로한다. 이 전통은 순례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동부 인디언들이 오랫동안 가을 추수 축하의식을 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추수감사절이 지금 같은 축하의 날이 된 것은 1863년부터였다. 남북전쟁 동안 북군은 이런 의식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애국주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링컨 대통령이 국경일로 선포한 것이었다. 순례자들과 추수감사절은 아무 관련이 없다. 1890년대까지 이들은 전통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고 1870년대까지 누구도 순례자’(Pilgrims)라는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역사가 추수감사절에 부여한 이데올로기적 의미는 당황함을 증폭시킨다. 추수감사절 전설은 미국인을 민족중심주의자로 만든다. 결국 하느님이 우리 문화 편에 있다면 왜 우리가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가?”

 

로웬 교수의 지적은 우리 같은 이민자 출신 미국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청교도 백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신 이 풍요로운 땅에는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아메리카 합중국을 이루고 있다. 만일 미국이 청교도정신이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국가이념으로 고수한다면 다른 민족과 종교는 여기에 동화되지 않은 한 영원히 이 사회의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뱅주의에서 비롯된 청교도들은 근면과 절약에 의한 부()의 축적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로 평가했다.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자들에 대한 구원예정설을 주창하는 칼뱅주의는 선택받은 자들의 부귀와 이를 이룰 수 있는 지식과 능력 등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출발한 청교도정신은 개척정신과 실용주의정신으로 이어져 초창기 미국의 건국이념과 자본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개척정신은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학살하면서도 오히려 이러한 업적(?)을 하느님의 은혜로 감사드릴 수 있는 정신적 밑바탕이 되었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면서 이를 하느님께 선택된 국가로서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를 일방적으로 공격한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조지 W 부시)

 

미국 장로교의 선교로 한국에 뿌리내린 한국 개신교 일부신자들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슬로건으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마치 사탄이나 구원받아야 할 전도대상으로 취급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과정과는 관계없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성공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구원 받고, 세상 삶에서 하는 일들이 모두 잘되어 지위도 올라가고, 재물도 쌓고, 영예도 얻고, 육신도 건강하게 산다는 이른바 삼박자 축복등 철저한 기복신앙을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교회자체의 부흥도 신자 수와 건물, 재산 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종교행태는 독선과 선민의식으로 가득찬 기독교 원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정한 인류의 평화는 각 민족과 인종 그리고 다양한 종교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공존하는 것이다. 의식이나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모든 종교는 각기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조물주를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참 좋았더라.”라고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즐기되 한편으로는 이 땅에 정착해 살다가 백인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원주민들과 가진 자들의 나눔이 없어 굶주리는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14.11.10 뉴욕 虛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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