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서른네 번째 편지
벗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벗님께 보내는 편지가 벌써 9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몇 번이면 끝나리라 믿었는데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이제는 미국소식을 듣고 싶어 제 편지를 기다리신다는 여러 벗님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현장기록 삼아 계속 써내려가라는 뜻인가 봅니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하우스 <뉴스로 자료사진>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이 끝나면 곧바로 크리스마스 무드에 접어듭니다. 벌써 집집마다 오색전구로 장식해 성탄절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며칠 전 손자녀를 데리고 존스비치 해안가에서 해마다 열리는 Magic lights에 다녀왔습니다. 왕복 5마일이 넘는 해변도로를 갖가지 형태를 온통 오색찬란한 불빛으로 장식했습니다. 에펠탑부터 산타가 오토바이 타는 것 등 수 백 가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내년 대학에 입학하는 손녀 아이는 사진 찍기 바쁘고 어린 손자는 탄성을 지르며 재잘거립니다. 아이들에게는 무척 즐거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코로나는 최악의 상태로 치솟고 있습니다. 매일 20만명 오르내리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하루 2천 명이 넘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1,500만 명 확진자와 사망자 28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인구 2,900만 텍사스주는 인구의 4.4%에 해당되는 127만 명 확진자를 기록하고 캘리포니아주도 124만명, 플로리다주도 100만 명이 넘습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미국 최고의 전염병 전문가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추수감사절 여행과 연말연시를 맞아 3차 대유행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코로나 1차 백신접종이 몇 주 안에 시작될 수 있지만, 미국은 정말 위태로운 상황에 진입하고 있다며 연말연휴 시즌에 연방정부와 주정부, 도시와 각 가정은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강조합니다. 파우치 박사는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는데 2주가 걸리고, 무증상자의 바이러스 전파도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과 집회제한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결과 뒤집기 시도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트럼프가 부정선거라고 문제를 제기한 접전 주에서 속속 바이든 승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입니다. 또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 법무장관 윌리엄 바도 “법무부는 2020년 선거결과 바꿀 수 있는 부정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발표해 트럼프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트럼프로서는 이제 불복할 수단이 남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시도는 자신이 연루된 각종 의혹에 대해 확실하게 사면을 받고 퇴임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와 CNN 등은 트럼프 법률대리인 줄리아니가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선제사면을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셀프사면’은 법리상 불가능해 트럼프가 임기 전에 사임하고 팬스 부통령이 권한대행으로 트럼프를 사면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 여러 가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셈입니다. 미국을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배워 온 오랜 생각에 새로운 민낯을 보는 심정이 착잡합니다.
며칠 전 때 아닌 호우와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몰아쳤습니다. 저는 우중에 해안가로 향했습니다. 오랜 코로나로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갑자기 분노하는 바다를 보고 싶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성난 바다를 바라봅니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먹장 같은 새까만 먹구름이 수평선에 맞닿아 있는 가운데 집 채만한 파도가 하얀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갈매기와 오리들도 백사장에 무리를 지어 피해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옆에 주차했던 밴 트럭에서 긴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에 완전무장한 채 내립니다. 장화라기보다는 잠수복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는 차에서 낚시대를 내려 어깨에 걸치고 거센 빗줄기를 헤치고 바다에 들어갑니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니 그는 거센 파도를 몸으로 막으며 연신 낚시줄을 바닷물을 향해 던집니다. 한 시간 이상 지켜보는 동안 한 마리도 잡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다와 맞서 싸우는 사람처럼 연신 낚시줄만 던집니다. 84일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마지막 사흘 간 사투를 벌이다 잡은 대어를 피냄새 맡고 달려든 상어에게 모든 살점이 뜯겨 뼈만 남은 고기를 들고 돌아왔다는 노인과 바다 주인공처럼 그 노인 역시 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거대한 파도와 사투를 벌이는데 희열(喜悅)을 느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맞서고 있는 코로나와의 혈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과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인류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엄청난 희생을 헛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 주일부터 새로운 한 해로 계산합니다. 지난 11월29일 시작된 대림절(강림절)은 ‘기다림’과 ‘희망’의 시기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부디 새해에는 예수님 탄생이 상징하는 것처럼 인류가 코로나에서 구원되고 인류공동체가 새로운 다짐으로 화해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새 하늘 새 땅이 도래(到來)하기를 기대합니다. 마치 2800년전 이스라엘 예언자 이사야의 말처럼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야 65.11)는 신탁(神託)이 이 시대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벗님여러분 이제 코로나도 막바지 고비입니다. 새해에는 백신이 널리 접종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어 이 재앙을 무사히 넘겨 머지않은 훗날 기쁨 속에서 상면하기를 기대합니다. 일간 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12월3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