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스물아홉번째 편지
벗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연휴는 잘 지내셨는지요, 염려했던 연휴기간 코로나가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에 마음이 놓입니다. 국민들이 귀향과 성묘를 자제했던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정말 심각합니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3,700만 명에 접근하고 사망자도 107만 명을 바라봅니다. 선두주자 미국 확진자도 780만 명에 사망자는 22만 명에 달합니다. 대선 한 달 남겨놓고 트럼프 대통령부부까지 감염(感染)되어 대통령은 월터리드 군병원에 입원했다가 본인의 완강한 고집으로 사흘 만에 급히 퇴원했지만 백악관 대변인과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한 다수 고위직원들이 감염되어 백악관 자체가 ‘코로나 소굴’이되었습니다. 상원의원 3명을 비롯한 여러 측근들도 감염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정치가 불확실성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최고 전문의료진이 24시간 돌보면서 중증환자에 투약하는 고가의 항바이러스치료제와 항염증치료제, 항체치료제와 보조약물을 투약했습니다. 두 차례 산소마스크 치료와 임상실험도 끝나지 않은 면역제를 주사했습니다. 일반국민에게는 어림도 없는 집중치료입니다. 뉴욕타임즈는 일반국민이 이런 치료를 받으려면 보험이 있더라도 10만 불 이상 청구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상태가 호전된 트럼프는 대선이 다급한 나머지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기 퇴원했습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마스크를 팽개치면서 “코로나를 무서워하지 말라. 트럼프정권에서 개발한 특효약으로 상태가 좋다, 20년은 젊어졌다”고 외쳤습니다. 자신을 ‘코로나에 승리한 영웅적 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미국의 핵심인 백악관과 트럼프 부부를 사로잡아 미국이 ‘코로나 지옥’임을 입증했으며, 트럼프의 황당한 행동은 왜 미국이 ‘코로나 지옥’이 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트럼프는 그동안 마스크 착용을 조롱하면서 온갖 가짜정보를 유포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봐도 “코로나에는 클로락스 소독약 주사가 특효다” “어항소독제가 직효다” 등으로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외쳤습니다. 이를 믿고 소독약을 마신 조지아주 할머니가 사망한 일도 있습니다. 코넬대학 연구팀은 올 1월부터 5월까지 3,800건 코로나 관련기사 중 가짜정보 38%가 트럼프 발언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허위정보의 최대동력이라는 점이 놀랍다”고발표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각 주정부에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라며 상업재개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국민들은 이런 트럼프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의 코로나 감염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며 냉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SNS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특효약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시범보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트럼프뿐 아니라 지금까지 코로나에 냉소적으로 대처했던 국가원수들이 연이어 확진을 받았습니다. 남미 최대 감염국인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도 양성판정 받고 존슨 총리는 죽다 살아날 정도로 심하게 앓았습니다. 물론 통치자에 대한 국가의 의료역량 총동원으로 아직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영국 존슨 총리는 앓고 나서야 코로나가 무서운 줄 알았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코로나에 승리했노라”고 외치는 중입니다.
며칠 전 한국의 96세 장모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맏사위인 저와 아내는 당연히 달려가야 할 일입니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고 항공사, 여행사, 영사관에 분주히 문의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임종을 지키는 처제의 발 빠른 중계로 미국과 캐나다, 네덜란드에 흩어진 저의 가족 모두 장모님께서 운명하시기 전 카카오톡 화상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신사임당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45년을 홀로 지내시면서 4남3녀를키우시고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아마추어 화가로서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으신 분입니다. 어느 손녀는 할머니의 임종 날짜를 들어 10월4일, 1004 즉 ‘천사‘였다고회고합니다. 손녀가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장모님은 신사임당이자 천사로 자손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따라 성공한 삶인지 실패한 삶인지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장모님의 善終을 보면서 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지금은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졌지만 젊었을 때만 해도 ’人生七十古來稀‘라고 70세면 상노인 취급받았습니다. 저도 70중반이니언제 죽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요즘은 모든 단체회합도 화상을 이용합니다. 저는 익숙하지 않아 가끔 강연회 등에 초대받으면 들어가 보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 장모님 작별인사를 카카오톡 화상통화로 했습니다. ‘궁즉통(窮則通)’이란말처럼 방법을 찾으면 있는 법입니다. 이것도 미국에서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심산한 마음 달래려 해변을 걷습니다. 피서객이 떠난 가을바다는 쓸쓸합니다. 낚시꾼들만 말없이 세월을 낚습니다. 얕은 물가에 알에서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주먹크기 어린 갈매기 20여 마리가 얕은 물가에서 나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방에 큰 갈매기 서너 마리가 지키고 있습니다, 어린 갈매기가 좀 멀리 간다 싶으면 큰 갈매기가 즉시 제동을 겁니다. 마치 ‘갈매기유치원’ 같습니다. 올해 해변은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생태계 삶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지혜를 느낍니다. 갈매기, 오리, 도요새 등 날짐승들도 나름대로 고유 언어가 있고 살아가는 방식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솔방울을 따서 구강치료제도 만들고 해당화 열매로 술도 담갔습니다. 해변의 조개와 홍합도 가끔 식탁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바다뿐 아니라 숲과 호수도 많은 공부가 됩니다. 숨 가쁘게 쏘다니던 시절에는 생각도 못했던 즐거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하느님께서 인류에 주신 ‘안식년’이라고 생각됩니다. 인류 ‘공동의집’ 지구도 안식년이 필요합니다. 허리케인, 산불, 이상기후 등 모든 이변은 몸살 앓는 지구의 신음소리로 들립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허리케인 4등급 델타가 뉴올리온즈를 향해 맹렬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상대는 심각한 위험을 예고합니다, 큰 피해가 없기만 바랄뿐입니다. 한편 코로나로 생계의 한계선상에 처한 빈곤층에 대해서는 국가공동체와 더 나가서 국제사회가 함께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인류가 코로나 위기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벗님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또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2020년 10월7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