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의 추억

안탈리아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자다깨다하며 잠을 설쳤더니 몸이 힘들어한다.
오늘 하루는 나가지말고 푹 쉴까했지만 침대에 누워있자니 생각만 많아지고 몸은 더 처진다.
이럴 땐 일단 나가서 걷는게 답이다.
신들의 휴식처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휴양지에 왔는데 방구석만에 박혀있으면 안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탈리아는 아내랑 함께 온 적이 있어서 가볼만한 곳을 알고 있기에 인터넷 검색도 제대로 하지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올드 타운 입구인 하드리안 문으로 갔다.
하드리안 문은 서기 130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안탈리아 방문을 기념해서 건립한 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칼레이치의 마리나 항구까지 이어지는 구시가지를 걷게 된다.

로마시대의 돌길과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고 예쁜 카페와 상점들도 많아 구경하느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느려지고 셧터를 누르는 손가락은 바빠진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왼쪽길로 내려오다 보니 아담한 공원이 있고 정면으로는 푸른 대서양이 펼쳐진다.
잠시 쉬면서 첨가물없이 석류만 착즙(搾汁)해서 짜낸 쥬스를 한 잔 마시며 멀리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설산과 발 밑으로 보이는 마리나의 그림같은 풍경을 감상했다.
오른쪽 내리막 길을 따라 걷다보니 성벽 아래 돌계단으로 마리나가 나타난다.
해적선 코스프레를 한 유람선(遊覽船)은 한 시간 타는데 10달러나 10유로를 받는다.
예전에 왔을 때 타봤으니 패스다.
사실은 혼자 와서 유람선 타기가 뻘쭘하다.
요트장, 방파제, 공원을 돌아보고 아내와 함께 갔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행복했던 날을 추억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직 않았다. 확실한건 현재 뿐이다.
과거를 아쉬워하는 것도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다 부질없다.
눈물은 오늘로 끝내자고 다짐했다.
과거에 매달려 울거나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지말자.
그냥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인듯 최선을 다하자.
나이 70이면 종심(從心)이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가 가자.
번잡한 생각들을 털어버리고 신시가지로 나왔다.
올드 바자르를 구경하고 먹자 골목에서 볶은밥이 나오는 양고기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서 발생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아뿔사! 일방 통행길이다.
오는 길과 가는 길의 노선이 다른거다.
어렵게 정류장을 찾아서 구글선생의 말씀을 따라 버스를 타고 하차지점에서 잘 내렸다.
호텔까지 걸어가려고 맵을 열어서 위치를 입력했는데 오류가 난다.
계속 처음에 갔던 하드리안문과 칼레이치로 가라고 나온다.
거리의 사람들과 상점 주인에게도 물었지만 언어불통이라 도움이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가서 되돌아 오기로 했다.
출발지에 내려서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내가 탈 버스는 오지 않는다.
여기 버스는 영어 설명은 물론 안내문이나 안내 방송, 도착 예정시간 알림 같은건 전혀 없다.
350원 짜리 버스니 그냥 알아서 타세요 시스템이다.
어두워진 거리에서 어찌해야할지 망설이다가 아예 걸어서 가기로 했다.
거리가 6.5km로 나오니 해볼만하다.
깜깜한 길을 걷다보니 방향감각을 상실해서 어디서 꺾어야하는지 혼란이 온다.
한참 걷다가 확인해보니 엉뚱한 방향이다.
완전 Vertigo 상태에 빠져버렸다.
이 혼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손을 들지도 않았는데 택시가 내 앞에 섰다.
택시비 3,500원에 호텔까지 편하게 왔다.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내 하는 짓이 우스꽝스럽다.
아날로그 여행자라 늘 헤매고 다닌다.
좀 철저히 알아보고 준비하면 될텐데 여전히 몸으로 때우는 여행을 한다.
그래도 길을 잘못 찾아 헤매는 바람에 길을 빨리 익혔다.
현지인들 사는 모습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과거에도 헤매고 다녔지만 갈 곳은 다 갔다.
이건 한국에서는 할 수가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관광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면 바보같다고 할지 몰라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새로운 경험을 해나가는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오늘도 참 좋은 날이다.
서퍼가 파도를 즐기듯,
노매드는 고난을 즐긴다.
헤매는 여행도 나쁘지않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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