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기분

우즈벡의 사마르칸트 숙소에서 얀덱스 앱으로 택시를 불러서 혼자 타고 국경까지 다이렉트로 갔다. (택시비 14,000원)
시작은 진짜 룰루랄라 였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주변의 민둥산에는 흰 눈이 덮여있다.
황량한 벌판이라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도시보다 훨씬 춥다.
나중에는 더럽게 추웠다.
조금씩 쌔한 느낌이 들기 시작이다.
타직의 이미그레이션 창구는 점심시간이라고 굳게 닫혀있다.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등과 가슴을 맞대고 서서 기다린다.
창구가 열리자 아비규환(阿鼻叫喚)이 시작됐다.
순서도 줄도 없다.
서로 자기가 먼저 왔다고 소리지르며 싸우고난리 부루스다.
난 묵묵히 떠밀리며 한발짝 한발짝씩 창구 앞으로 다가 갔다.
난 이태원 참사를 겪은 한국에서 온 남자이시다.
이까짓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란다. ㅠㅠ
여유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심리 치료를 받아야 정도로 숨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국경을 넘으면서 왠지 타직 가는 길이 순탄치 못할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국경을 넘는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국경을 넘자 마자 타직의 수도인 두샨베로 가는 쉐어 택시를 탔다.
승객은 3명이다.(택시비는 1인당 약 2만7천원)
타직은 아프가니스탄과 붙어 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는 산악 지형이다.
두산베에 가까워질수록 높고 험한 산들이 가로 막는다.
중간에 늦은 점심을 먹는다.
필리핀에서 먹었던 불랄로(갈비탕과 비슷) 같은 탕국에다 빵이 나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프니 그냥 꿀맛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3천원 정도)
거기다 승객 중에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이 있어 우리 말로 대화를 하니 찜찜했던 마음도 풀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강원도의 한계령 같은 산들을 넘는다.
중간에 작은 도시에서 도로변에 차를 세운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기도 시간이란다.
그래 잘하는거다.
내 안전도 함께 빌어다오.

산골 작은 동네의 모스크. 승객 중에 한명이 기도 시간이라고 차를 세우게하고 기도 하러감.
남은 3명은 내려서 도수 체조하며 기다림.

다시 산을 타고 오르는데 하늘이 하수상하다.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세찬 눈보라가 친다.
차들이 엉금엉금 긴다.
창밖을 보니 낭떠러지는 아니지만 꽤 깊은 벼랑이 허연 눈으로 째려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창 문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졌다.
택시 안은 정적만이 무겁게 흐른다.
내가 아무리 여행하며 안전에 주의한다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저 갑자기 잘 생겨 보이는 기사님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흘깃흘깃 바라보며 믿고 맡길수 밖에는 없다.
속으로 빌었다. 용왕님! 제가 용띠랍니다.
앞으로는 진짜진짜 진짜 착하게 살겠으니 부디부디 굽어 살펴 주시어요.

그 땐 무섭고 지금은 멋진 눈발
그래도 혹시나 제설차가 나타나지 않을까 헛된 기대도 해봤지만 역시나 였다.
암튼 온 몸에 쥐가 나도록 용을 쓰다가 평지로 내려오니 눈 대신 비가 내린다.
운전기사는 비가 오고 시간도 늦으니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하게 차를 몬다.
그러더니 마침내 접촉 사고를 내고 만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바로 옆에 있었기에 바로 사고 처리가 끝날줄 알고 차안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내리는데 계속 말싸움만한다.
눈보라 치는 설산을 함께 넘어왔기에 동지애를 발휘해서 종결 될 때 까지 기다려주려고 했지만 어느 하세월이다.
알고보니 여긴 보험 따윈 없다는거다.
양자가 합의가 안되면 경찰서로 가서 합의가 끝날 때 까지 있어야한다.
밤 11시가 넘으니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
택시를 불러서 숙소로 왔다.

사마르칸트에서 두샨베 까지는 보통 택시로 올 때 6시간을 잡는다.
헌데 나는 12시간이나 걸렸다.
우쒸 ~
하지만 사고없이 무사히 왔으니 감사하다.
300km나 되는 먼 거리를 단 돈 4만원 내고 띵까띵까 하면서 왔으니 불평불만하면 나쁜 싸람이지.
차카게 살자! 캄사하며 살자!라고 팔뚝에 타투라도 해야할거같다. ㅋ
하쿠나마타타~

한국말 잘하는 타직 사람 아미루를 차속에서 만나 유익한 정보를 많이 들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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